항목 ID | GC03101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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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鳶- |
영어의미역 | Kite Flying Fun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기도 광명시 |
집필자 | 간호윤 |
[정의]
경기도 광명 지역에서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며 즐기는 놀이.
[개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전승되어 오는 민족 전래의 기예(技藝)의 하나로서, 음력 정초가 되면 해마다 장관을 이루었던 민속놀이이다. 연은 종이에 가는 댓가지[竹骨]를 붙여 실로 꿰어 공중에 날리는 놀이 용구로서 바람을 이용하여 하늘에 띄운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으며, 연싸움 놀이와 연 액막이가 대표적이다. 연싸움은 연줄을 서로 닿게 하여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놀이이고, 연 액막이는 정월 초하룻날부터 대보름날에 걸쳐 연을 띄워 보내 그해의 재액(災厄)을 멀리 쫓아 버리는 놀이이다.
[연원]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에 김유신조를 보면, 647년(신라 진덕왕 즉위 1년)에 “대신 비담(毗曇)과 염종(廉宗)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므로 왕이 두려워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김유신(金庾信)[595~673]이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워 다시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볼 때 이 시기에는 이미 연이 일반화되어 있었으며, 또한 놀이로서의 도구뿐만 아니라 전쟁의 도구로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최영(崔瑩)[1316~1388]이 탐라의 목호(牧胡)[목축을 하는 몽고인]가 반란을 일으켜 이를 평정할 때 접근이 어렵게 되자, 큰 연을 많이 만들어 불을 달아 올려 평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병사를 큰 연에다 매달아 적진을 공략했다고 전해진다.
[놀이도구 및 장소]
연과 실을 감는 얼레가 필요하며, 장소는 마을의 동산에 올라 한다. 일반적으로 연을 만드는 데는 재료로 대와 종이를 필요로 한다. 대는 보통 고황죽·백간죽·식대 등을 사용하며, 종이는 대개 창호지를 사용한다. 옛날에는 대부분 연을 손수 만들어 날렸다. 연을 만들 때는 먼저 연의 바탕이 될 종이를 접어서 크기를 정한다. 연의 크기는 연을 날리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일정하지 않다.
연줄은 상백사(常白絲)·당백사(唐白絲)·떡줄·세철사줄 등 여러 가지를 사용한다. 상백사는 한국산 명주실로 만든 것이고, 당백사는 중국산 명주실로 만든 것이며, 떡줄은 재치실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세철사줄은 가느다란 철사인데, 이것은 휘기만 하면 잘 끊어지므로 사용하는 예는 아주 드물다. 연실을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는 연실에 부레나 풀 끓인 물에 사금파리나 유리 가루를 타서 서슬이 일도록 하는데, 이것을 ‘가미’ 혹은 ‘갬치’라고 하며, 이를 ‘가미 먹인다.’고 한다.
연줄을 감는 얼레는 모양에 따라 네모얼레, 육모얼레, 팔모얼레, 볼기짝얼레[납짝얼레] 등이 있다. 보통 네모얼레를 많이 사용하나 경기용으로는 육모얼레나 팔모얼레를 많이 사용한다.
[놀이방법]
연싸움은 아이들이 겨울에 연을 날리며 하는 놀이로서, 연실에다 사기 깨진 것으로 가루를 만들어 풀을 먹이고 서로 연줄을 끊는 싸움이다. 연 액막이는 정월 대보름에 연에다 자기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써서 노끈을 달고 노끈에 불을 붙여 하늘로 날려 보내는데, 이것은 액을 막아 주고 한 해의 무사를 기원하는 일종의 제의적 놀이이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연을 날리는 시기는 주로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부터 보름까지이다. 보름 이후에도 연을 두면 귀신이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보름이 되면 ‘액(厄)연 띄운다.’고 하여 연을 멀리 날려 보내는 풍습이 있다.
[현황]
우리의 전통적인 민속놀이는 현재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와 생활 방식의 변화로 거의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놀이에 비하여 연날리기는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으나 아이들의 놀이라기보다는 민속의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현재 광명 지역에서는 광명시 청소년상담지원센터의 주관으로 너부대근린공원 등에서 연초에 연날리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