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100529
한자 李元輔
영어음역 Yi Wonbo
이칭/별칭 백익(伯益)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광명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지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530년연표보기
몰년 1589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대표관직 흡곡현령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백익(伯益). 할아버지는 청기군(靑杞君) 이표(李彪)이고, 아버지는 정의대부(正義大夫)로 승진하고 함천군(咸川君)에 봉해진 이억재(李億載)이다. 동생이 영의정 이원익(李元翼)이다.

[활동사항]

이원보(李元輔)[1530~1589]는 1570년(선조 3) 생원에 합격한 후 1577년(선조 10) 처음으로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에 제수된 뒤 1578년(선조 11) 의금부도사, 1580년(선조 13) 한성부참군을 지냈다. 이때 송사를 공평하게 처리하여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1581년(선조 14) 내섬시주부로 승진하고 1582년(선조 15) 통진현감으로 나갔다. 1586년 부친상을 마치고는 흡곡현령에 제수되어 어진 몸가짐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1589년(선조 22) 병으로 사직한 뒤, 이해 8월에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이원보는 몸가짐과 일을 처리하는 데 매사 공평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어진 마음으로 수령의 소임을 하였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흡곡현령 시절에는 부친상을 끝내고 늘 바른 몸가짐을 유지하였으며 어질게 백성을 어루만져 1589년 병으로 사직한 후 사가로 돌아가려고 할 때 고을 백성들이 크게 울며 길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또한 공손하였으며 꾸밈을 좋아하지 않고 효와 우애를 중시한 인물로 검소함과 위민의 덕을 실현한 관리라 볼 수 있다.

[묘소]

묘소는 광명시 소하동 전주이씨 묘역에 있으며, 비문은 호조참판 박승원이 문장을 짓고 글씨는 동생 이원익이 썼다.

[상훈과 추모]

1604년(선조 37) 이후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통정대부와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