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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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洞西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유적/민간 신앙 유적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혜정 |
현 소재지 | 신동 서복마을 선돌 -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 옛 서복마을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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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 신앙 유적|선돌 |
크기(높이,둘레) | 132㎝[크기]|37㎝[폭]|26㎝[두께]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에 있는 선돌.
[개설]
1840년경 전라도 나주에 살던 선령남씨(宣寧南氏)가 서복마을로 이주해 평산신씨(平山申氏)와 혼인하고 정착하였다. 선령남씨가 들어오면서 마을 지형이 호랑이가 포효하는 형국이라 하여 '태굴'이라고 부르다가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서복으로 개칭되었다. 서복마을 입구에는 선돌 1기가 서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선돌에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였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동의 옛 서복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형태]
신동 서복마을 선돌의 재료는 부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크기는 132㎝, 폭 37㎝, 두께 26㎝이다.
[의례]
서복마을에서 선돌에 대한 마을 공동의 제의(祭儀)는 없었다. 다만, 주민들에 따르면 예전에 마을 사람들은 선돌에 마을의 수호와 풍요를 기원하였다고 한다.
[현황]
광주광역시 광산구 삼도동 일대의 선돌은 모양이 비슷하고 납작한 형태를 띠었다. 신동 서복마을 선돌은 삼도동 일대에 분포한 삼도동 동촌마을 선돌, 내산동 쌍내마을 선돌, 대산동 우치마을 선돌 등과 같이 마을 어귀에 세워져 벽사(辟邪), 액막이, 장승, 마을 경계 표시 등의 기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동 서복마을 선돌은 넘어지지 않도록 아랫부분에 시멘트를 다져서 옛 자리에 그대로 서 있다.
[의의와 평가]
신동 서복마을 선돌에 마을 사람들이 특별한 의례를 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을 신앙의 대상물로서 전통 사회에서는 마을 공동체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