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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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널뒤기,초판희(超板戲),판무희(板舞戲),도판희(蹴板戲)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혜정 |
성격 | 민속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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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시기 | 정월 초하루|정월대보름|추석 등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여자들이 널빤지의 양쪽 끝에 올라서서 번갈아 뛰어오르며 즐기는 민속놀이.
[개설]
널뛰기는 긴 널빤지의 중간을 짚더미나 가마니로 괴어 놓은 다음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구르며 뛰어오르는 놀이이다. 주로 정월 초하루, 정월대보름, 추석 등 큰 명절에 많이 행하여졌다.
[연원]
널뛰기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널뛰기는 널뒤기, 초판희(超板戲), 판무희(板舞戲), 도판희(蹴板戲)라고도 하였다. 널뛰기에 대한 기록을 보면 『경도잡지(京都雜誌)』권2 세시(歲時) 원일조(元日條)에 "항간의 부녀들이 널 조각을 짚단 위에 가로로 놓고, 양쪽 끝에 갈라서서 굴러뛰기를 몇 자까지 올라간다. 그때 패물 울리는 소리가 쟁쟁하고 지쳐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낙을 삼는다. 이것을 초판희(超板戲)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최영년의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옛 풍속에 정월 초하루부터 젊은 부녀들이 쌍으로 널을 뛰어 놀이를 하는데, 이 풍속은 고려시대부터 전해 왔다. 이것을 널뛰기라고 일컫는다."라고 적고 있다. 또 『송경지(松京誌)』권2 풍속조(風俗條)에도 "정월 초하루에 여아(女兒)들이 판무희(板舞戲)를 한다."고 기술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2월조에도 "저자에서는 부녀자들이 흰 널빤지를 짚단 위에 올려놓고, 널빤지 양끝에 두 여인이 마주서서 뛰면 한 사람은 올라가고 또 한 사람은 내려왔다 하며 여러 자를 올라간다. 또 그들은 힘이 빠져서 지치는 것을 낙으로 여긴다. 이것을 말하여 도판희(跳板戲)라 한다. 이 놀이는 정월 초까지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널뛰기는 긴 널빤지와 널 받침이 필요하다. 널빤지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며 긴 널빤지의 가운데에 짚단이나 가마니로 널 받침을 하였다. 일부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어 관을 만들고 남은 변죽으로도 널을 만들어 뛰기도 하고 미리 준비해 둔 관의 판으로 뛰기도 하였다.
[놀이 방법]
널뛰기는 널빤지를 짚단이나 가마니로 밑을 괸 다음 양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마주보고 번갈아 뛴다. 놀이에 사용되는 널의 길이는 250㎝~270㎝ 정도이고, 너비는 30㎝~70㎝ 정도이다. 그런데 폭이 너무 넓으면 무거워서 뛸 때 잘 올라가지 않는다. 널을 뛸 때 더 높이 뛰기 위해 널 양끝 부분의 흙을 파기도 한다.
널을 뛰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먼저 양쪽에 올라선 다음 널이 평형을 이루도록 조절한다. 이렇게 널을 뛸 때 몸의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옆에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뛰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경우도 있다. 또 몸무게가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뛰면 평형을 잘 이루며, 차이가 날 때는 가벼운 사람이 널을 더 갖는다. 이렇게 평형이 이루어진 다음 널을 뛰는데 한 사람이 뛰어올랐다가 내리디디면 그 힘의 반동으로 상대편이 뛰어오르게 된다. 이 동작을 서로 번갈아 반복하면서 계속한다. 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 일곡마을에서는 널을 뛰면서 '밥상 들어간다'라고 외치며 뛰어오른 사람이 공을 차듯 한쪽 발을 앞으로 차고 내리면, 상대편에서는 뛰어오르면서 다리를 벌려 '문을 연다'라고 외치며 밥상을 받는 시늉을 하면서 널을 뛰었다고 한다. 이 놀이의 승부는 한쪽이 힘껏 굴러서 상대편의 발이 널빤지에서 떨어지게 되면 지게 된다. 널을 뛸 때 옆에서 응원을 하거나 음식을 장만해 먹기도 하였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널뛰기는 정초에 주로 하는 여성들의 놀이로 몸의 균형 감각을 길러주며 다리 힘을 길러주는 놀이이다. 널뛰기는 다양한 민요를 부르면서 하는 놀이로 흥겨운 집단 놀이의 성격을 지닌다. 일부 마을에서는 미리 준비해 둔 관의 판을 널판으로 널뛰기를 하였다. 이 판을 사용한 이유는 나무가 단단해 좀이 먹지 않아 관을 만들 때 좋기 때문이다.
[속설]
옛날에 죄를 지은 두 남자가 옥에 갇혀 있었다. 이들 부인 중 한 사람이 옥에 갇힌 남편의 얼굴이 보고 싶어 또 다른 죄인의 부인과 공모하여 널을 뛰면서 담장 너머 옥 속에 갇혀 있는 남편들의 얼굴을 엿보았다고 한다. 또 다른 속설로는 집 안에만 갇혀 생활하던 부녀자들이 세상 밖을 보고 싶어서 널뛰기를 하여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을 때 담장 밖의 세상 풍경과 남자의 모습을 훔쳐보았다고 한다. 이밖에 처녀 시절에 널을 뛰지 않으면 시집을 가서 아기를 낳지 못한다거나, 정초에 널뛰기를 하면 일년 내내 가시에 찔리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다.
광주광역시에서는 널뛰기를 정월대보름에 하면 한해 동안 발바닥에 좀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정월에 특히 많이 뛰었다고 한다. 광산구 동호동 남동마을에서는 널이 움직이지 않도록 널 가운데에 사람이 앉기도 한다. 이렇게 가운데 앉은 사람은 '젖이 애린다'고 해서 서로 앉지 않으려고 하였다.
[노래]
널을 뛰면서 다양한 유희요가 삽입되는데, 광주광역시 남구 노대동 노대마을에서는 "우~ 널뛰자, 우~ 굴러라, 후~ 굴러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고 하고, 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용연마을에서는 널을 뛰며 "울 아버님 떠다준 댕기, 울 어머님 접어준 댕기, 울 오랍씨 호령 댕기, 울 성님 눈치 댕기, 울 조카 우는 댕기, 성안에서 널을 뛰다 성밖에서 빠졌는가, 기전이가 죽었으면 나를 주고, 아전이가 죽었으면 나를 주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현황]
널뛰기가 지금은 마을에서 거의 행하여지지 않고 있지만, 민속박물관 등지에서 체험을 위해 행하는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