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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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俗 |
영어공식명칭 | Folklore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서희 |
[정의]
광주광역시에서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민간의 지식과 생활 습속.
[개설]
민속은 동일한 문화권을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룩해 낸 보편적인 생활 풍습이다. 따라서 민속은 인간 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있는 광범위한 문화체이기 때문에 민속의 각 영역들은 서로 긴밀한 관련을 갖게 마련이다. 여기서는 각각의 개별적인 민속 현상보다는 세시풍속과 평생의례, 그리고 민간신앙과 민속문학과 같은 대범주에 따라 광주광역시의 민속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광주광역시의 세시풍속]
세시풍속은 일 년 사계절의 순환에 따라 일정한 날에 수행되는 일련의 풍속을 의미한다. 광주광역시의 세시풍속은 시차적 구성에 따라 그것이 치러지는 절일(節日)이 매달 고르게 배치되어 나타나고 있다. 1월 설날과 정월 대보름 그리고 입춘, 2월 초하루,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流頭), 7월 백중(百中), 8월 추석, 9월 중구(重九), 10월 상달, 11월 동지, 12월 제석(除夕)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광주광역시의 세시풍속은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 사이에 집중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광주광역시의 평생의례]
광주광역시에서 행해지는 평생의례에는 아이의 출산을 전후하여 행해지는 산육 의례(産育儀禮)와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었을 때 행하는 관례(冠禮), 일정한 연령에 이른 남녀가 부부의 연을 맺기 위해 행하는 혼례(婚禮), 사람이 죽으면 맞이하게 되는 상장례(喪葬禮)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산육 의례
산전 의례(産前儀禮)와 산후 의례(産後儀禮)로 나눌 수 있다. 광주 지역에서 행해진 산전 의례에는 아기를 갖기 위해 또는 아들을 낳기 위해 명산에 가서 빌거나 당골을 집으로 불러들여 지앙맞이 굿을 하는 등의 기자 의례(祈子儀禮), 임신을 알려주고 태아의 성별 등을 암시해 주는 태몽, 그리고 임신 중 오리고기나 개고기 등을 먹지 않고 초상집에 가지 않는 등의 금기가 있다. 출산과 함께 행해지는 의례를 산후 의례라고 한다. 산실(産室)의 윗목에는 삼신상을 차려놓는데, 바닥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상을 놓고 정화수 한 그릇과 미역을 올려놓는다. 금줄은 산모의 해산을 알리는 의미로 대문 위에 쳤다. 아이가 태어난 지 일 년이 되면 돌을 쇤다.
관례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었음을 알리는 의례를 관례라고 한다. 광주 지역에서는 혼례를 하루나 이틀 앞두고 관례를 하였다. 이를 '상투틀기' 또는 '상투올림'이라고 한다. 양반들과 달리 농가에서는 결혼할 때 상투를 틀고 머리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하였으며, 농부들 사이에서는 성인 농군으로 인정해 주는 의례로서 진서례를 행했다.
혼례
혼례 절차는 혼인 전에 이루어지는 과정인 의혼(議婚)과 사성(四星) 보내기, 혼인식인 대례(大禮),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서 행하는 후례(後禮) 등으로 진행되었다. 의혼이란 혼담을 진행시키고 혼사가 결정되면 양가가 여러 가지 문서를 교환하여 혼인을 진행하는 과정을 말한다. 의혼이 원만하게 이루어져 혼인이 결정되면 남자 쪽에서 여자 쪽에 신랑의 사주를 적은 사성을 보낸다. 혼례식 날 아침이 되면 신랑은 신부 집으로 가는데, 이것을 초행(初行)이라고 한다. 이후 전안시(奠雁時)에 맞추어 신랑이 대례청으로 들어가고, 예식은 홀기(笏記)에 따라 진행된다. 신부가 혼례식을 마치고 처음으로 시가(媤家)에 가는 것을 신행(新行)이라고 한다. 재행(再行)은 혼례 후 신부가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것으로, 신행 후 3일 만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상장례
사람이 죽으면 맞이하게 되는 의례로, 평생의례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엄숙하게 치러진다. 고인이 돌아가시는 것을 지켜보는 임종(臨終)부터 초혼(招魂)과 수시(收屍) 그리고 사자상(使者床)과 부고(訃告)를 내는 과정까지가 초종(初終)이다. 초종의 절차가 끝나면 시신을 목욕시켜 입관하는데, 이를 습렴(襲斂)이라고 한다. 입관 절차가 모두 끝나면 윗목에 관을 모셔놓고 앞에는 병풍을 친다. 이때부터 비로소 조문객을 맞이할 수 있다. 장례식이 끝나면 반혼제(返魂祭)와 우제(虞祭), 졸곡제(卒哭祭), 소상(小喪)과 대상(大喪), 담제(禫祭)를 지내는데, 이렇게 해야 3년간의 모든 상례 과정이 끝난다. 오늘날 광주광역시의 상장례는 대부분 전문 장례식장에서 치러진다. 탈상도 대개 삼일 탈상이나 사십구일 탈상으로 변하고 있어 과거와 같은 엄격한 삼년 탈상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광주광역시의 민간 신앙]
민간 신앙은 종교적 체계가 없는 상태로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널리 전승되어 온 주술적 신앙과 행위를 의미한다. 광주 지역에서 행해져 온 민간 신앙에는 크게 마을 신앙과 가택 신앙(家宅信仰) 그리고 풍수지리와 민간 의료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마을 신앙
마을 신앙의 대표적인 모습은 당산제(堂山祭)를 들 수 있다. 과거 농경 사회에서는 마을마다 당산제를 활발히 지냈지만,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오늘날에는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별로 많지 않다. 1990년대 중반까지 광주 지역에서 마을 단위의 당산제를 지냈던 마을은 광산구와 남구의 몇 마을에 불과하였으며, 그나마 현재 당산제가 남아 있는 마을도 주민들 스스로가 아닌 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관 주도의 당산제이지만 2017년까지 지속되고 있는 마을로는 서구 풍암동, 북구 문흥동, 남구 칠석동과 승촌동 등이 있다.
가택 신앙
가택 신앙은 가옥을 중심으로 하여 각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신앙 활동이다. 오늘날에는 가옥의 형태나 생활양식의 변화 등으로 가택 신앙의 행위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지금은 단절되었지만 옛날부터 광주 지역의 가정에서 모셨던 가택신에는 성주, 조상신(祖上神), 조왕(竈王), 철륭, 터주, 업, 문신(門神), 측신(厠神) 등이 있으며, 이들은 나름대로의 직능을 가진 신으로 인식되고 의례가 행해졌다.
성주신은 가택의 최고 신격으로서 가정 내의 제반 사항을 모두 관장하는 신으로 믿었다. 집 안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성한 마루에 모시는데, 신체(神體)가 없이 모셔지기도 하고 신체가 있는 경우에는 대개 항아리나 동이에 쌀을 넣어 두는 형태로 모셨다. 성주신은 새로 집을 짓거나 이사를 하면 봉안한다. 특별한 제약이 없이 어느 가정이나 원하면 가옥신을 맞이할 수 있으며, 명절이나 제사 그리고 집안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상을 차려 위해 주었다.
조상신은 말 그대로 그 집안 조상신의 성격으로 신체는 '조상단지' 또는 '지앙단지' 등으로 형상화하여 모셨다. 조상단지 안에는 주로 쌀이나 벼를 넣어두는데, 이 쌀과 벼는 새 곡식이 나오면 교체하고 단지 안에 있던 쌀이나 벼로 밥을 지어 식구들끼리 먹었다. 조상단지는 주로 장남의 집에만 모셨다.
조왕신은 부엌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대개 부뚜막 위에 조그마한 단을 쌓고 물그릇을 올려두는 형태로 모셨다. 조왕은 여성에게 가장 친숙한 신으로 신봉되어, 부녀자들은 매일 또는 초하루와 보름에 조왕그릇에 정화수를 담아 가족들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철륭은 집의 뒤뜰에 단지 또는 동이를 놓고 물을 부은 다음 그 위에 백지나 볏짚으로 덮어 모셔두었다. 이 밖에 터주는 지신(地神)으로 집을 지켜주는 터줏대감이고, 측신은 변소를 관장하는 신격이며, 업은 각 가정의 재물을 지키는 신격으로 주로 구렁이로 상징화되었다. 만약 집에 사는 사람 중 하나라도 구렁이를 보면 그 집이 망한다고 믿어서 흰죽을 지어 놔두면 구렁이가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기타 민간 신앙
마을 신앙인 당산제와 가택 신앙 외에도 민간에서 행해지는 의료 행위인 민간 의료와 세시풍속 의례, 풍수지리와 충제(蟲祭), 기우제 등도 민간 신앙의 영역에서 이해할 수 있다.
먼저, 광주 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행해졌던 민간 의료에는 '주당맥이'와 '객귀물림' 등의 의료 행위를 들 수 있다. 주당맥이는 주장맥이라고도 하는데, 급체나 기타 질병이 들면 환자를 마당에 눕혀놓고 행해졌던 것이고, 객귀물림은 제사를 지낸 음식을 잘못 먹거나 밖에서 먹은 음식으로 탈이 나면 객귀가 붙은 것으로 생각하여 행해졌다.
세시풍속과 관련된 대표적인 신앙으로 영등신(靈登神)을 들 수 있다. 영등신은 '영등할머니'로 불렸는데, 영등할머니는 음력 2월 초하루부터 세이레 동안 하늘에서 내려와 지상에 머문다고 하며, 이 때문에 2월을 '영등달'이라고 부른다. 영등할머니가 내려오는 2월 초하루에 각 가정에서는 장독대나 부엌을 깨끗이 청소하고 영등할머니를 모셨다. 음력 6월 보름인 유두에는 떡을 장만하여 논에 가지고 가서 물꼬에 묻는 행위를 하는 용신제(龍神祭)를 지냈다.
풍수지리는 지관이라고 불리는 전문적인 풍수가에 의해 묏자리[음택 풍수(陰宅風水)]나 집자리[양택 풍수(陽宅風水)] 등을 잡을 때 주로 행해진다. 풍수 신앙은 과거보다는 약화되었지만 오늘날에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광주광역시의 민속 문학: 설화]
민속 문학은 구술(口述)을 통해 전승되는 경우가 많아 구비 문학(口碑文學)이라고도 한다. 이때 구비 문학은 단순한 구전이 아닌 인간의 인식과 감정을 말에 새겨 넣은 언어 예술의 의미를 내포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이야기인 설화(說話)는 일정한 서사 구조를 띤다. 따라서 일상의 신변잡기나 역사적 사실의 이야기는 설화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설화 중에는 사실을 가장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여부보다는 문학적인 흥미와 교훈 때문에 존재한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옛날과 같은 이야기판을 찾기 어렵고, 그나마 이야기판에서 주로 구연되는 것도 옛날 이야기보다는 사람들의 경험담 위주로 전승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에서는 광주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승되어 오던 신화, 전설, 민담을 통해 설화의 전승 양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신화(神話)는 신성성이 인정되는 집단의 범위에 따라 크게 건국 신화, 시조 신화, 마을 신화로 나눌 수 있다. 광주 지역은 신화적 전승의 토대가 매우 약한 지역이다. 다만 역사적 인물인 견훤(甄萱)이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후백제를 건국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후백제 건국 신화를 이 지역의 신화로 간주할 수 있다.
전설(傳說)은 증거물을 통한 진실성이 이야기 전승의 기반이 된다. 광주 지역에서도 증거물과 관련한 다양한 전설이 전승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전설은 인물 전설로, 김덕령(金德齡)과 관련한 전설은 오늘날에도 광주광역시 전역에서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김덕령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동한 인물이며, 조정 관료들과 갈등하면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김덕령과 관련한 전설은 출생담에서부터 비범담, 활약담, 죽음담 등의 하위 유형의 이야기를 파생시키며 오늘날에도 활발히 전승되고 있다. 그 밖에도 박상(朴祥), 배중손(裵仲孫), 기대승(奇大升), 나숭대(羅崇大) 등의 인물 전설이 전해진다.
지명 전설은 지역마다 다양한 유형으로 전해오는데, 특히 광주의 진산(鎭山)이라고 일컬어지는 무등산 주변의 지명 전설이 강한 전승력을 지니며 구전되고 있다. 또한, 과거에 있었지만 현재에는 사라진 인공물인 태봉산(胎封山)과 경양방죽(景陽防―) 관련 이야기도 지명 전설로 전해지고 있으며,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중심으로 「신거무 장터의 유래」가 다양하게 각색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민담(民譚)은 일정한 증거물을 기반으로 전승되는 전설에 비해서 전승력이 약하다. 가장 많이 전승되는 민담은 효행과 관련한 이야기인데 「둘째아들이 효자」, 「어머니와 지렁이」, 「아들을 버린 효부」, 「불효의 결과」 등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동물 보은담(報恩譚) 유형의 이야기도 눈에 띈다. 광주광역시에서 널리 전승되어 오고 있는 민담(民譚)으로 가난한 농부가 개미를 구해주어 보은으로 부자가 되어 경양방죽을 만들었다는 내용의 「광주 경양지」 이야기, 실존 인물인 김방(金倣)이 개미집을 구해주고 보은으로 쌀을 받아서 경양방죽을 만들었다는 「김방 할아버지와 개미 떼」 이야기가 있다.
[광주광역시의 민속 문학: 민요]
민요(民謠)는 민중들이 일상적인 삶을 통해 불러온 노래로, 일을 하면서 또는 의례를 치르면서 그리고 놀이를 하면서 불렀다. 일과 의식 그리고 놀이는 모두 민중들의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삶의 내용이다. 이것은 민요가 생활의 필요에 의해 생성되고 존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광주광역시에서 전승되어 온 민요를 통해 지역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사라져 가는 민요를 보존·복원하기 위해 채록 수집한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1987년 전라남도에서 간행한 『전남의 농요(農謠)』에 대촌동 칠석마을에서 조사한 들노래의 사설과 악보가 수록되어 있다. 1988년 전라남도에서 간행한 『전남의 민요』에 대촌동 칠석마을 상여소리가 수록되어 있다. 1993년 문화방송에서 발행한 『한국민요대전 2- 전라남도편』에 광산군 삼도면 송학리 봉학마을의 노동요와 의식요, 대촌면 칠석마을의 의식요, 유희요가 수록되어 있다. 2000년 광주시립민속박물관에서 간행한 『광주의 민요』에 광주의 여러 지역에서 조사한 노동요, 부녀요, 의식요, 유희요, 잡가·타령이 수록되어 있다. 2013년 남도민속학회와 광주광역시 북구청에서 발행한 『용전들노래의 역사와 문화』에 사설과 악보가 수록되었다. 2015년 향토문화개발협의회와 광주광역시 서구청에서 간행한 『광주의 농요 '서창만드리'』에 서창 들노래에 관한 상세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2018년 광주광역시에서 조사한 전통 민요와 근현대 민요는 ‘한국구비문학대계' 사이트에 업로드 되어 있다.
광주 지역의 노동요(勞動謠)는 논농사요와 밭농사요, 길쌈요, 나무등짐소리, 제분요(製粉謠), 옹기 작업 노래가 조사되었다. 논농사요는 벼농사를 지으면서 공동으로 작업을 하며 부른 민요이다. 「물품는 소리」, 「모밟는 소리」,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가 수집·채록되었다. 「논매는 소리」는 초벌매기 소리, 두벌매기 소리, 만드리[우야소리], 풍장소리로 세분된다. 그 밖에 밭을 매면서 육체적 고달픔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밭매기요를 불렀는데, 「밭매기 노래」, 「콩밭매기 노래」, 「타작 소리」, 양잠요(養蠶謠)가 수집·채록되었다. 옷을 만들기 위해 실을 잣고 베를 짜면서 부르는 길쌈요 등도 수집·채록되어 있다.
의식요(儀式謠)는 혼례나 상장례의 경우처럼 민중들이 의례를 치르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광주 지역의 혼례요에는 가마 메는 소리인 「볼매당소리」, 상장례요인 「상여소리」가 조사되었다.
유희요(遊戲謠)는 여럿이 놀면서 부르는 민요이다. 광주 지역에서는 강강술래, 고싸움놀이 노래처럼 세시풍속의 일환으로 불리는 유희요가 있다. 또한, 「진도아리랑」, 「둥당애타령」, 「산아지타령」, 「창부타령」, 「각설이타령」 등 놀이의 현장에서 불리는 유희요가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부르는 유희요로 「찧어라 찧어라 방아야」, 「두껍아 두껍아」, 「빈등아 빈둥아」가 수집·채록되었다. 그 밖에도 「흥타령」, 「육자배기」, 「매화타령」처럼 남도잡가(南道雜歌)의 영향을 받은 민요도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