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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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斗經 |
영어공식명칭 | Go Dookyung |
이칭/별칭 | 처중(處中),황탄거사(黃歎居士),만경당(晩警堂)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광주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바른 |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 출신의 문인.
[가계]
고두경(高斗經)[1619~1690]의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처중(處中), 호는 황탄거사(黃歎居士) 또는 만경당(晩警堂)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경조(高敬祖)이며, 할아버지는 고성후(高成厚)이다. 아버지는 의병장 고부민(高傅敏)이며, 어머니는 김온덕(金蘊德)의 딸 광산김씨(光山金氏)이다. 부인은 이정건(李廷楗)의 딸 전의이씨(全義李氏)이다.
[활동 사항]
고두경은 1619년(광해군 11)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송시열(宋時烈)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고두경이 유학에 깊이 정통하여 송시열이 크게 기대하며 ‘만경당(晩警堂)’이라는 당호를 지어 주었다. 1675년 송시열이 효종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상에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덕원(德源)에 유배되자 김오(金浯), 박광후(朴光後) 등 동문과 함께 상소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고두경은 1677년 10월에 유한징(柳漢徵), 유응수(柳應壽), 박광후, 박광일(朴光一) 등과 스승 송시열의 유배지를 방문하였다. 이들은 송시열에게 『금호집(錦湖集)』과 『순천박씨족보』의 서문, 전라도 광주 문회재(文會齋)의 현판 등을 부탁하였으며, 『대학(大學)』의 내용 등에 관해 토론하였다. 고두경은 이후 고향에서 시문을 낙으로 삼고 여생을 보내다 1690년(숙종 16)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고두경의 저술로는 후손 고재철이 발(跋)을 써서 1979년에 간행한 『송학세고(松鶴世稿)』가 전한다. 『송학세고』는 아버지 고부민의 시문이 권1을 이루고, 고두경의 시·서가 권2에 실려 있다. 문집의 뒤에는 송시열이 고두경에게 보낸 서찰 10통이 원본 그대로 영인되어 붙어 있다. 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