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879
한자 朴榮林
영어공식명칭 Park Younglim
이칭/별칭 백현(伯顯)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광주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바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박영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24년 - 박영림 사마시 입격
몰년 시기/일시 1656년연표보기 - 박영림 사망
묘소|단소 시나산(時羅山) -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과 순창군 동계면 경계
성격 문인|효자
성별
본관 순천(順天)
대표 관직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정의]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에 거주한 문인.

[가계]

박영림(朴榮林)[1602~1656]의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백현(伯顯)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원수(朴元壽), 할아버지는 박언침(朴彥琛)이다. 아버지는 충의위(忠義衛) 박세정(朴世挺), 어머니는 이광종(李光鍾)의 딸 완산이씨(完山李氏)이다. 동생은 박수림(朴遂林), 박무림(朴茂林)이다. 부인은 이제남(李悌男)의 딸 광주이씨(廣州李氏)로, 5남 2녀를 낳았다. 아들은 박상순(朴尙純), 박상후(朴尙厚), 박상소(朴尙素), 박상진(朴尙眞), 박상규(朴尙規)이다.

[활동 사항]

박영림은 1602년(선조 35)에 태어났으며 광주에 거주하였다. 어려서부터 행실이 착하고, 효심이 깊었다. 21세 때, 아버지가 특이한 병에 걸려 의원도 고칠 수 없다고 하자 박영림은 밤낮으로 울며 기도하였다. 어느 날 아버지의 꿈속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약을 주고 갔는데, 이후 점차 병이 호전되었다고 한다. 박영림의 기도로 신명이 감복하였다고 사람들이 여겼다는 일화가 전한다. 1624년(인조 2)에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며, 박영림의 효성이 조정에 전해져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제수(除授)하였다. 1656년(효종 7)에 사망하였다.

[묘소]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묘표(墓表)에 의하면, 박영림의 묘소는 전라도 광주의 서쪽 시나산(時羅山)에 있었다고 전한다. 시나산은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과 순창군 동계면에 걸쳐 있는 풍악산(楓嶽山)의 옛 이름이다.

[상훈과 추모]

박영림은 전라도 광주에 있었던 진천사(眞泉祠)에 배향되었다. 진천사는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毁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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