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1446
한자 眞泉祠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8년 - 진천사 철폐
원소재지 진천사 -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 지도보기
성격 사우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우.

[개설]

진천사(眞泉祠)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손재(遜齋) 박광일(朴光一)[1655~1723]을 배향하여 세워졌던 사우이다. 박광일은 본관이 순천(順天), 자가 사원(士元), 호가 손재(遜齋), 시호가 문숙(文肅)이며, 송시열(宋時烈)에게 사사하였다. 숙종 때 천거되어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의 익위(翊衛)·왕자사부(王子師傳)·세자시강원자의(世子侍講院諮議)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산수를 즐기다가 영조 때 죽었다. 숙종 묘정(廟庭)에 배향되고 광주 진천사에 제향되었다.

[위치]

광주광역시 광산구 진곡동 진천마을에 자리하고 있었다.

[변천]

진천사는 건립 연도가 확실하지 않다. 다만 『광주읍지』에 의하면 주(州)의 서쪽 30리[12㎞]에 있는데 문숙공(文肅公) 박석명(朴錫命) 등을 배향하며 장의(掌議) 2인, 색장(色掌) 2인, 원생(院生) 20인이며, 고종 무진(戊辰)[1868년]에 철폐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우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확실하지 않다.

[현황]

진천사(眞泉祠)가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곡동이 2010년경 광주광역시 진곡산단 조성에 포함되면서 문중에서 진천사를 이전할 것이라 하였는데 실제로 이전한 장소를 찾을 수 없다. 다만 진천사유허비(眞泉祠遺墟碑)만 남아 있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진천사유허비의 초건 시기는 1635년으로 추정되며, 1935년 김동수가 찬하여 새로 유허비를 세워 옛것과 함께 있다. 진곡마을에 오성재(五星齋)후암정(後巖亭)[2016년 무너짐]이 있고, 직진하여 가작마을 농로를 따라 산을 돌면 진천사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유허비만 남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진천사손재 박광일을 기리던 사우로서 의의가 있으나 현전하지 않는다. 산업단지 조성으로 이전된 문화재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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