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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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岩洞遺蹟 |
영어공식명칭 | Sunam-dong Site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운로 55[선암동 549]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이정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3월 13일~4월 11일 - 선암동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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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8년 10월 6일~12월 4일 - 선암동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6월 1일~2010년 5월 31일 - 선암동 유적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현 소재지 | 선암동 유적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운로 55[선암동 549] 일대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성격 | 터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선암동에 있는 삼국시대·조선시대의 복합 유적.
[위치]
광주광역시 선암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운수나들목에서 평동공단 방면으로 가다가 호남대학교 쪽으로 우회전하면 왼쪽에 있으며, 어등산[232.7m]의 말단부 사면과 황룡강의 충적층이 접하는 곳에 있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광주광역시 선암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선운지구 택지개발 사업부지에 속해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 3월 13일부터 4월 11일까지 지표조사를 진행한 데 이어 2008년 10월 6일부터 12월 4일까지 시굴 조사와 2009년 6월 1일부터 2010년 5월 31일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선암동 유적은 구하도를 중심으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는데 윗마을에서는 삼국 시대에 해당하는 단일 시기의 유구(遺構)를 비롯하여 집터 221기, 지상 건물지 12기, 구덩이[수혈(竪穴)] 19기, 구 17기, 고분 10기, 말목열 등이 확인되었으며, 유물은 달걀 모양의 토기, 옹형토기, 항아리 모양의 토기, 목제공 등이 출토되었다. 아랫마을에서는 삼국시대의 집터 89기, 고분 8기, 구덩이 1기 등의 유구와 근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되는 구 3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이중구연토기[아가리 부분에 점토 띠를 덧붙인 토기], 사발 모양의 접시, 뚜껑접시, 주구토기[귀때가 달린 토기], 시루, 토제 유리옥 거푸집, 항아리 모양의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광주광역시 선암동 유적은 유구가 있는 지점을 제외한 주변이 하도나 저지대 습지의 경관을 하고 있으며, 유구가 조성될 당시 윗마을의 경우 마을 전체의 배수를 위한 구를 굴착한 다음 집터를 축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표 수위의 변화나 유로의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구가 매립되거나 분구묘와 관련된 유물이 집중 폐기되는 양상도 확인되었다. 또한, 하단부에서는 구의 양 측면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말목과 가로목으로 호안을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암동 유적은 집터와 분구묘에서 출토된 유물, 유구 간 중복 관계를 통해 집터와 지상 건물지가 중심이 되는 3세기 중·후반부터 5세기 후반, 그리고 고분이 조성되는 6세기대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은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고 이후 분구묘가 들어섰을 가능성이 높으나 2개의 마을은 집터나 고분, 지상 건물지의 분포 양상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윗마을은 동쪽과 서쪽에 군집을 이루면서 집터가 분포하고 중앙 부분은 공지로 남아 있다. 분구묘는 동쪽에 있는 집터군 동편으로 원형분 10기가 집터와 일부 중복되어 있으며, 집터가 폐기된 후 분구묘가 조성되었다. 지상 건물지는 윗마을 중앙 부분의 공지와 집터군 주변에서 확인되었다. 아랫마을은 원형분 8기가 약간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축조되었다. 집터는 서쪽을 중심으로 군집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으로 갈수록 밀집도가 낮다. 선암동 유적은 광주 선운지구 주택단지가 들어서 유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출토된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광역시 선암동 유적은 황룡강 유역의 충적지에 자리한 삼국시대의 복합 유적으로, 작은 하천을 사이에 두고 있는 윗마을과 아랫마을 2개의 마을이 온전히 조사되었다. 집터와 분구묘, 지상 건물지에서 출토된 유물, 유구 간 중복 관계를 통해 유적의 중심 연대를 추측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향후 영산강 중·상류 지역 삼국시대의 마을과 더불어 선암동 일대의 당시 문화상을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