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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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亭洞遺蹟二 |
영어공식명칭 | Sanjeong-dong Sites 2 |
이칭/별칭 | 산정동 지실 유적Ⅰ,산정동 지실 유적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255-9|고룡동 443-1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이정민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12월 10일~2008년 6월 6일 - 산정동 유적 2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지표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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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년 7월 22일~8월 12일 - 산정동 유적 2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2월 28일~2011년 2월 8일 - 산정동 유적 2[산정동 지실 유적Ⅰ]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5월 13일~10월 19일 - 산정동 유적 2[산정동 지실유적Ⅱ] 호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현 소재지 | 산정동 유적 2[산정동 지실 유적Ⅰ] - 광주광역시 광산구 고룡동 443-1 일대 |
현 소재지 | 산정동 유적 2[산정동 지실 유적Ⅱ] -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 255-9 일대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110[매곡동 산83-3] |
성격 | 터 |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정동·고룡동에 있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위치]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2는 영산강[115.5㎞]의 지류인 풍영정천의 지류에 해당하는 장수천 수계에 있으며, 지형은 어등산[232.7m]의 동쪽 끝자락에 형성된 구릉지대에 해당한다.
[발굴조사 경위 및 결과]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2는 호남고속철도 5-3공구와 호남고속철도 광주광역시 차량기지 건설사업 공사구간에 속해 2007년 12월 10일부터 2008년 6월 6일까지 호남문화재연구원의 지표조사에 이어 2010년 7월 22일부터 8월 12일까지 시굴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2010년 12월 28일부터 2011년 10월 19일까지 '산정동 지실 유적'Ⅰ과 '산정동 지실 유적Ⅱ' 2개 구역으로 나누어 2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산정동 지실 유적Ⅰ' 구역에서는 삼국시대의 집터 4기와 구 2기가 확인되었고, 유물은 이중구연호, 달걀 모양의 토기, 석기, 조형토기, 독널무덤편 등이 출토되었다. 집터의 구조와 출토된 유물, 절대연대, 인접한 유적의 발굴 성과를 고려할 때 유적의 해당 연대는 기원후 3세기 초에서 4세기 중반경으로 추정된다
'산정동 지실 유적 Ⅱ' 구역에서는 삼국시대의 집터 93기, 지상 건물지 7기, 구덩이[수혈(竪穴)] 1기, 구 14기, 요지 3기, 분구묘 3기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구 12기, 조선시대의 움무덤 3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발형토기, 달걀 모양의 토기, 이중구연토기[아가리 부분에 점토 띠를 덧붙인 토기], 사발 접시 모양의 토기, 항아리 모양의 토기, 가락바퀴, 돌살촉, 관옥[관의 앞을 꾸미는 옥], 백자발, 청동숟가락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2 중 '산정동 지실 유적 Ⅱ' 에서는 집터, 분구묘, 지상 건물지, 구 등이 중복을 이루고 있으며, 방형분 3기와 지상 건물지, 집터와 구가 확인되었다. 유구는 서로 군집을 이루면서 분포하고 있으며, 집터, 지상 건물지, 구·분구묘 간, 집터 간의 중복관계가 여러 양상으로 확인된다. 다만, 집터와 지상 건물지, 중복된 구의 형성 시기는 3세기 중·후반에서 4세기 후반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분구묘는 주구에서 출토된 5세기 이후의 완형토기가 개와 공반되는 점, 분구묘 하단의 퇴적층에서 수습된 유공소호가 분구묘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기원후 5세기 중반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2는 현재 호남고속철도가 들어서 현재 유구는 남아 있지 않으며, 출토된 유물은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광주광역시 산정동 유적 2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긴 시대에 걸쳐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는 대형 복합 유적이다. 산정동 유적 2의 중심 점유 시대는 삼국시대로, 유적 내 넓은 범위에 자리한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분구묘와 집터는 당시 이 지역에 자리한 정치체의 규모와 세력을 그대로 반영해 주는 매우 의미 있는 자료이다. 따라서 산정동 일대의 고대문화사를 체계적으로 복원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산정동 유적 2는 인접해 있는 산정동 유적 1과 하남동 유적과도 매우 비슷한 문화적 양상이 확인되고 있어 상호 비교·검토를 통해 이 지역의 고대문화를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활용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