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사무소에서 주관하여 발행한 정미면 지지. 『정미면지』는 정미면사무소와 정미면지 편찬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2012년에 정미면 최초로 만든 지지(地誌)이다. 1983년에 발간된 『당진군지』를 기초로 하여 항목을 작성하였다. 『당진군지』는 총 8편으로 지리 편, 역사 편, 행정 편, 산업 경제 편, 문화 편, 성씨 인물 편, 문화재와 사적지...
-
충청남도 당진시에서 행해지는 제철 산업, 발전 산업 등 과학기술의 총칭. 현대 사회를 일컬어 흔히 ‘과학기술의 시대’라 부른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전통적인 농업 지역이던 당진시도 변화시켰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서해안 시대가 열리고 산업 개발이 본격화된 것이다. 당진시는 1994년 7월 7일 서해안 고속 도로가 개통되었고, 당진~대전 간 고속 도로가 연결되었으며...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김광렬의 신도비. 김광렬(金光烈)[?~1545]은 영돈령 좌원 부원군 윤여필(尹汝弼)의 외손자다. 중종 대에 생원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현감에 오르고 사직서 영(社稷暑令)을 역임하였다. 인종이 경학으로써 익찬(翊贊)에 선발하여 장차 크게 쓰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혼란한 정치를 피해 정미면으로 낙향하였다. 신도비...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방(大防)들의 대(大) 자, 구운미(九雲美)의 운(雲) 자, 가지맥(枝山脈)의 산(山) 자를 따서 대운산리(大雲山里)라 하였다. 조선 시대 덕수 이씨(德水李氏) 육송공판서 이선부가 구운미가 운중 반월형(雲中半月形)으로 좋은 지대라 하여 정착하려 했다. 그러나 기존 세력인 육씨 300여 호가 그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정...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조리에 한새울이란 자연 마을이 있는데 이곳의 지형이 풍수지리학적으로 금닭이 알을 품은 명당인 금계 포란형(金鷄抱卵形)이다. 성주 이씨인 진잠 현감 이필범의 묘가 있는데 이 묘의 주위 마을을 한새울이라 하였다. 한새울에서 한→크다[大], 새→조로 바뀌어 ‘대조(大鳥)’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또는 대야동의 '대' 자와 한...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덕실(德實)에서 덕(德) 자와 말목에 해당되는 부락이란 뜻의 ‘마항(馬項)’에서 마(馬) 자를 따서 덕마리(德馬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덕곡리와 마항리 일부를 병합해 덕마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일제 말 해미장과 면천장의 중간 지점인 황소 고개 밑에서 장사꾼들이 황소에 덕석[소등에 덮는 방한재]을 입혔다는 덕석골이란 자연 마을의 덕(德) 자와 3상(三相)과 8판서(八判書)가 속출하였다는 삼상지평(三相地坪)이란 자연 마을의 삼(三) 자를 따서 덕삼리(德三里)라 부르게 되었다. 덕삼리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었으며...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옥녀봉, 국사봉, 초당봉 등 명산들로 둘러싸인 가운데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큰 도로가 생길 것이라 하여 도산리(道山里)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 지방도가 있다. 원래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염솔면 도이동, 삼산동, 갈동을 통폐합하여 도이와...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거부(巨富)를 제외하고 기타 주민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여 부자집의 꿈을 꾸기까지 하였다 하여 몽매동(夢梅洞)이라 부르게 되었고, 몽매동의 매(梅) 자와 특별한 전설은 없으나 발이방동(鉢伊坊洞)의 방(坊) 자를 따서 매방리(梅坊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몽매동과 발이방...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모산(大模山)의 기슭에 촌락을 이루었다하여 붙여진 모산(模山)의 모(模) 자와 평야 지대라서 붙여진 이름인 평촌(平村)에서 평(坪) 자를 따서 모평리(模坪里)라 하였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도면 두당리와 하평리 일부를 병합하여 모평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해방 후...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산성리에 있는 근대 개항기 문인환의 효자 정려. 문인환(文仁煥)[1846~1886]은 문익점의 후손으로, 1846년 2월 12일 문영휘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인환은 태어난 지 몇 해 안 되어 큰집인 정미면 산성리에 사는 문영철의 양자로 들어갔다. 여덟 살이 된 어느 날 갑자기 양아버지 문영철이 큰병이 들자 문인환은 지극한 병간호로 낫게...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鳳)이 낳았다 하여 봉생리(鳳生里)라 하였다. 구씨가(具氏家)에서 장사를 치르는데 하관 직전에 지사와 상주 간의 모종의 알력으로 지사가 조금 더 파야 된다고 하여 다시 파기 시작하였고 밑바닥 돌장을 떠 일으키자 봉황새 한 쌍이 날았다. 이때 급히 다시 덮는 과정에서 봉황의 발 하나가 부러졌고 하나는 날아서 은봉산에 숨었다는 전...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은봉산(隱峰山) 봉황(鳳凰)의 보호를 상징하는 봉화(烽火) 산맥이 부락 동쪽을 가로막아 둘려 내려 쌓인 곳이라 하여 봉성리(鳳城里)라 하였다. 해미군 염솔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염솔면 삼봉리와 하봉리를 통폐합해 봉화산 아래이므로 봉우재, 봉성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내동(士乃洞)의 사(士) 자와 현 진개골의 옛 지명인 진관동(眞冠洞)의 관(冠) 자를 따서 사관리(士冠里)라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진관동(眞冠洞)과 사내동(士乃洞) 일부를 병합해 사관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성리(山城里)라 부르기 시작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자모산 아래 동남방의 자모산 상부에 옛 성터가 있어 '산성(山城)'이라 부르게 되었다.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염솔면의 평촌리, 산성산리, 구동, 성산리 일부를 병합해 ‘산성산’과 ‘산성’에서 한 자씩 따서 산성리라 하...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참나무가 많아 숯을 굽는 마을이라 하여 숯골[炭洞]의 '숯' 음을 수(壽) 자로 대치하고, 자연 마을 이름 원당골(員堂-)의 당(堂) 자를 따서 수당리(壽堂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一道面)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수동(壽洞)과 안국동(安國洞)의 일부를 병합해 수동과 안국동에서 각각 한 자...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노승 배불형(老僧拜佛形)이라 하여 옛날 노승(老僧)이 정기적으로 순방하여 성미(誠米)를 받아 마을의 모든 재난을 방비하는 데 시주(施主)하여 마을 주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노승이 죽자 마을 주민들은 은공을 기리는 뜻에서 장례를 후히 치렀다. 노승이 되로 모은 성미가 산에 비할 만큼 많은 혜택을 받았다 하여 승산리(升山里)라 칭...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있는 어시산의 시(是) 자를 붙여 신시리(臣是里)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는 해미군 일도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시 어시산리, 거동과 사내동, 마항리 각 일부를 통폐합하여 신시리라 하여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그 후 1957년 11월 6일 법률 제456호에 의하여 정미면이 서산군에서 당진군으로 편입되었...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안국산 봉수지(安國山烽燧址)는 조선 시대 충청도 해미현의 봉수가 있던 곳이다. 안국산 봉수는 당진현의 고산 봉수(高山烽燧)로 이어지고, 면천군의 창택 봉수(倉澤烽燧)를 거쳐 경기도 양성으로 넘어갔다. 조선 시대 통신의 중요한 요충지가 현재 당진시 정미면의 안국산 봉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터만...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 터. 안국산 봉수지(安國山烽燧址)는 조선 시대 충청도 해미현의 봉수가 있던 곳이다. 안국산 봉수는 당진현의 고산 봉수(高山烽燧)로 이어지고, 면천군의 창택 봉수(倉澤烽燧)를 거쳐 경기도 양성으로 넘어갔다. 조선 시대 통신의 중요한 요충지가 현재 당진시 정미면의 안국산 봉수였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터만...
-
권행이 시조이고 권여경이 입향조인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세거 성씨.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는 고려 시대 ‘염솔부곡’이 있었다고 전하는 지역이 있다. 그곳은 6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하성리(下城里)와 우산리(愚山里)에 안동권씨(安東權氏)가 세거지를 형성하고 있다. 입향조는 권여경(權餘慶)[1565~1639]이며,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찾다가 정착하...
-
연을 하늘 높이 띄워 올리는 민속놀이. 연날리기는 종이에 가느다란 대나무 살을 붙여 만든 연을 실을 매어 바람을 이용해 하늘에 날리는 민속놀이이다. 충청남도 당진시에서는 정월 초하룻날부터 정월 대보름날 사이에 연을 날렸는데, 연의 높이를 겨루거나 상대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 또는 액막이 글귀를 써 넣고 연줄을 끊어 날려 보내는 액막이 행사용으로 연날리기를 많이 사용하였다...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뒤편에 남북으로 자른 자모 산맥의 우무산이 서북쪽에서 마을을 감싸고 있어 마을의 구심점을 이루었다 하여 구한말 우(牛) 자의 음을 우(愚)로 하여 '우산리'라고 칭하였다. 조선 시대 해미군 염솔면 지역에 속했으며, 우무산 아래이므로 우수산 또는 우산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에도 우산리만은 그대로 우산리라...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은봉산에서 열리는 벚꽃축제. 은봉산 벚꽃축제는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은봉산에서 매년 4월 중순에 벚꽃을 주제로 열리는 면 단위 축제이다. 정미면 생활 개선회와 정미면 청년회가 공동으로 주관한다. 2007년 시작되어 2017년 11회째 행사를 마쳤다. 봉황이 숨어든 산 또는 봉황이 숨어 있는 형상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된 은...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한학자·서예가. 이병태(李炳台)[1910~1992]는 해미 향교와 당진 향교의 전교와 유도회 당진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당진 지역 주민들에게 유교 경전을 강독하고 서예를 가르치는 등 한학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한학자이며 서예가였다. 이병태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시남(詩南)이다. 아버지는 이순목(李舜穆), 어머니는 능...
-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한학자·서예가. 이병태(李炳台)[1910~1992]는 해미 향교와 당진 향교의 전교와 유도회 당진 지부장을 역임하였고, 당진 지역 주민들에게 유교 경전을 강독하고 서예를 가르치는 등 한학 보급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한학자이며 서예가였다. 이병태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시남(詩南)이다. 아버지는 이순목(李舜穆), 어머니는 능...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에 있는 산성. 자모산성(慈母山城)[또는 子母山城]은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둘레를 흙으로 쌓은 토성이다. 자모산은 대호지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산성은 대호지면 주변의 해안을 감시하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모산성은 산정식(山頂式) 토성으로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산의 7~8부 능선을 따라 둘러 쌓은 산성이다....
-
충청남도 서산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을 당진시에 통합시킨 행정 구획 변경.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과 대호지면은 원래 서산시에 속했다. 하지만 두 면은 서산시보다 당진시에 가깝다는 이유로 당진군 편입운동이 1930년대부터 전개되었다. 줄기차게 진행된 이 움직임은 1957년 전격적으로 성사되었다. 그 결과 당진군의 군세(郡勢)가 확장되었고, 1958년 치른 제4대 민...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시 상도곡리, 삼곡리를 합하여 이곳의 천의포에서 이름을 따서 '천의리(天宜里)'라 하였다. 원래는 해미군 염솔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도곡리, 하도곡리, 상곡리 일부를 병합하여 그대로 '천의리'라 하였고, 충청남도 서산군 정미면에 편입되었다. 1957년 11월 6일 법령...
-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에 속하는 법정리. 하성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은봉산(隱峰山)의 봉황을 보호하고 있는 자모산의 산맥 아래 펼쳐진 마을이라 하여 '산성리', '하성리'라 각각 부르게 되었으며 은봉산과 연결된 봉화산 기슭의 동네를 '봉성리'라 불렀다. 해미군 염솔면 지역으로 성산 아래쪽이므로 아래성산, 하성산이라 하였다가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