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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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北區] |
영어공식명칭 | Eosayong|Woodcutter’s Song |
이칭/별칭 | 「초부가」,「얼사영」,「가마구타령」,「나무꾼소리」,「들노래」,「어산용」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서은 |
채록 시기/일시 | 1987년 6월 6일 - 「어사용」[북구] 대구직할시 북구의 칠곡1동 관음마을과 칠곡3동 도남마을에서 채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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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어사용[북구] 채록 추정지 - 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 |
채록지 | 어사용[북구] 채록 추정지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 |
가창권역 | 대구광역시 - 대구광역시 |
성격 | 민요 |
기능 구분 | 노동요|유희요 |
형식 구분 | 독창|자유 형식 |
박자 구조 | 자유박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노동요이자 유희요.
[개설]
「어사용」은 영남 지역 산간에서 불리던 나무꾼의 신세타령 노래로서 노동요와 유희요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 「초부가(樵父歌)」, 「얼사영」, 「가마구타령」, 「나무꾼소리」, 「들노래」, 「어산용」 등 다양한 이름으로 일컬어진다. 대구광역시에서 채록된 「어사용」[북구] 역시 삶의 고단함을 토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채록/수집 상황]
1987년 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대구직할시 북구의 칠곡1동 관음마을과 칠곡3동 도남마을에서 「어사용」[북구]이 채록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해당 지역은 각각 북구의 관음동과 도남동으로 개칭되었다.
1987년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에서 발간된 『민속예술』에 따르면, 1987년 6월 6일 대구직할시 북구의 칠곡1동 관음마을과 칠곡3동 도남마을에서 「어사용」[북구]이 채록되었다. 다만, 당시 채록 장소에 관한 기록이 애매한 점이 있어 정확한 현재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고 북구의 관음동과 도남동에 속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구성 및 형식]
「어사용」[북구]은 혼자서 부르는 독창 형식이며, 형식이나 장단에서 자유로운 구조를 가진다.
[내용]
관음마을과 도남마을에서 채록된 「어사용」[북구]은 사설의 길이가 매우 짧다.
「봉덕이노래」 유형인 관음마을의 사설은 다음과 같다. “삼월이라 십오일에 망월하는 소현들아/ 훈풍도 보련이와 부모 봉양을 생각해라/ 열아홉 살 묵은 과부가 스물 아홉 살 딸을 잃고/ 강원도 금강산 비탈길로 지내다가/ 구부러져도 내 딸 봉덕아/ 아~ 울어 운다.”
「갈가마구」 유형인 도남마을의 사설은 다음과 같다. “구야 구야 까마구야 식경영천 까마구야/ 산풀 비고 까마구야 이 풀 저 풀 비어서/ 퇴비 증산 하도록~.”
[현황]
현재는 나무를 하러 다니지 않기 때문에 「어사용」[북구]이 노동 현장에서 불리지는 않는다. 다만, 현재 노인들의 기억 속에 노래가 단편으로 남아 있고, 각 농요보존회에서도 전승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에서 전승되는 「어사용」[북구]은 채록된 내용이 짧고 단편적이지만, 지역에 다양한 유형의 「어사용」이 존재하였음을 알려 주는 소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