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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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嘉昌面 大逸一里 大一朴- 達城徐氏 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재영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에 있는 달성 서씨 집성촌.
[개설]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1리 대일박마을은 달성서씨(達城徐氏) 집성촌이다. 이 마을은 1570년(선조 3)경 영동 김씨(永同金氏)들이 마을을 개척하였다고 전하며, 1670년 조선 효종(孝宗) 때 천안 군수 달성인 서변(徐忭)이 임금에게 직소하였다가 곤장을 맞고 죽자 그 후손들이 피신하여 이 마을에 정착한 이래 서씨들의 세거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50여 가구의 달성서씨들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에는 1798년에 건립한 달성인 학암(鶴岩) 서균형(徐鈞衡)을 주향하고 용계(龍溪) 서변(徐忭)을 배향하는 오계 서원이 있다. 서균형은 고려공양왕(恭讓王) 대의 문신으로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과 양광도(楊廣道) 관찰사를 지낸 인물이다. 한편 서변은 한전 유세교의 반란을 직소하였다가 오히려 화를 입어 죽었다. 후에 서변의 충정이 후손들에 알려졌다.
[명칭 유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는 큰 골짜기에 있다 하여 대일(大逸)이라 이름 붙여졌다.
[자연환경]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는 동편을 남북으로 병풍산[567.7m]이, 서편을 남북으로 주암산[854.7m]이 크게 두르고 있는 가운데 위치하여 마을 명칭과 같이 골짜기에 형성되어 있다.
[현황]
대일박마을을 관통하는 길가에 자리 잡은 달성 서씨 서당 건물이 현재 남아 있다. 지금은 세입자가 살림집으로 고쳐 살고 있는데, 장방형 대지의 중앙에 우물이 있는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서당이 있고, 서쪽에 대문간과 변소가 있다. 서당은 방 두 칸에 마루 한 칸을 둔 세 칸 규모에 전면으로 툇마루를 놓았다. 살림집으로 개조하면서 방 왼쪽에 부엌을 증설하고, 창호와 쪽마루 등이 제거되는 변화를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