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9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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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瞻慕齋[智妙洞] |
영어공식명칭 | Cheommojae Hous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661[지묘동 72-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송은석 |
건립 시기/일시 | 1917년 - 첨모재[지묘동]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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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5년 - 첨모재[지묘동] 중수 |
현 소재지 | 첨모재[지묘동]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661[지묘동 72-3] |
원소재지 | 첨모재[지묘동] -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로 661[지묘동 72-3] |
성격 | 재실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경주최씨 문중 |
관리자 | 경주최씨 문중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에 있는 1917년 건립한 최동률을 추모하기 위한 재실.
[개설]
경주최씨 문중은 다천(茶川) 최동률(崔東嵂)[1585~1642]의 묘소 아래에 재실 첨모재를 지어 묘소를 보호하고자 했다. 최동률은 대구 출신 임란 의병장 태동(台洞) 최계(崔誡)의 첫째 아들로 조선 중·후기 대구의 유학자이자 경주최씨 지묘동 입향조이다. 현재는 같은 경내에 제단인 ‘첨모단(瞻慕壇)’이 조성되어 있다.
[위치]
공산터널을 팔공산 방향에서 대구시내 방향으로 빠져나와 180m쯤 내려오면 우측으로 ‘첨모재(瞻慕齋)’라 새겨진 거대한 자연석이 서 있다. 자연석에 새겨진 화살표 방향으로 200m쯤 가면 첨모재가 있다.
[변천]
첨모재는 1917년에 처음 창건되었다. 처음에는 초가인 정침과 기와집인 사랑채가 이자형(二字形)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뒤 정침은 현대식 건물로 다시 지었고 사랑채인 첨모재는 중수를 거쳐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에 첨모재 내에 첨모단을 조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형태]
첨모재는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운데 2칸 대청, 좌우 각 1칸씩은 방이며 대청 전면으로는 유리 창호를 설치했다. 과거에는 2칸 방 앞쪽으로 쪽마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건물 내외부에 ‘첨모재’ 편액과 ‘첨모재기’가 게시되어 있다.
[현황]
첨모재는 경주최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경주최씨는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의 주요 세거 문중 중의 하나이다. 그중에서 가사곡(佳沙谷)에 있는 경주최씨 문중의 재실이 첨모재이다. 따라서 첨모재는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경주최씨 문중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