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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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屯山洞 追慕齋 |
영어공식명칭 | Chumojae House of Dunsan-dong, Daegu |
이칭/별칭 | 척첨재,소곡재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16길 148[둔산동 13-1]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은석 |
건립 시기/일시 | 1930년대 - 척첨재(陟瞻齋)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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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6년 - 대구 둔산동 추모재, 옥산전씨 문중의 재실로 바뀜 |
현 소재지 | 대구 둔산동 추모재 -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16길 148[둔산동 13-1] |
성격 | 재실|재사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옥산전씨 문중 |
관리자 | 옥산전씨 문중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옥산전씨 문중 재실.
[개설]
대구 둔산동 추모재는 옥산전씨의 시조인 고려 신호위대장군 전영령(全永齡), 고려 예조판서 문평공(文平公) 전백영(全伯英)의 후손이자, 통훈대부 기장 현감 전침(全琛)의 현손인 만봉(晩峰) 전시림(全始琳)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위치]
대구광역시 동구 해안초등학교 정문에서 북쪽으로 약 400m쯤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측 길로 400m쯤 가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우측 길로 90m쯤 가면 또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좌측 길로 약 300m쯤 가면 우측으로 못이 보이고, 600m쯤 더 가면 우측에 추모재가 보인다.
[변천]
대구 둔산동 추모재는 1930년대에 건립된 인천이씨 문중의 척첨재(陟瞻齋)라는 재실이었다고 한다. 이후 1976년경 옥산전씨 문중에서 척점재를 매수하여, 건물의 이름을 지명을 본 따 소곡재(蘇谷齋)로 고쳤다가 다시 지금 이름인 대구 둔산동 추모재로 바꾸었다.
[형태]
대구 둔산동 추모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구 둔산동 추모재 평면은 3칸 방·1칸 대청이며 건물의 좌우 측면에 쪽마루가 있다. 약 2m 높이의 기단은 마름모형 돌로 쌓았으며 건물의 하부는 적벽돌 쌓아 막았다. 전면 4칸은 모두 유리 창호를 달았다.
[현황]
대구 둔산동 추모재는 옥산전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리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일대는 대구지역 토박이 문중들의 세거지 및 재실들이 많이 산재해 있는 지역이다. 따라서 대구 둔산동 추모재 역시 조선시대 지역의 인물·역사·문중·문화 등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