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8164
한자 建國準備慶北治安維持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8월 22일연표보기 -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 결성
최초 설립지 대구공회당 -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지도보기
성격 정치단체

[정의]

1945년 8월 22일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좌우익 연합의 건국 준비 정치 단체.

[개설]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建國準備慶北治安維持會)는 1945년 8월 22일 대구에서 결성된 좌우익(左右翼) 연합의 건국 준비 정치단체이다.

[설립 목적]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광복 직후 대구의 좌우익 성향의 정치세력이 연합하여 치안 대책을 비롯한 건국 준비 활동을 목적으로 결성하였다.

[변천]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대구에 미군이 진주한 이후 좌익의 대구시인민위원회(大邱市人民委員會)와 우익의 국민통일회(國民統一會)로 분화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1945년 8월 22일 지금의 대구콘서트하우스 자리에 있던 대구공회당(大邱公會堂)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朝鮮建國準備委員會 慶北支部)경북치안유지회(慶北治安維持會)의 통합으로 결성된 정치단체였다.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두 단체의 소속 구성원을 절충하여 154명의 확대 위원을 선출하였다. 위원장은 조선건국준비위원회 경북지부김관제(金觀濟)[1886~1951]가 맡고, 부위원장은 경북치안유지회백남채(白南埰)[1888~1950]가 맡았다. 총무에는 서상일(徐相日)[1887~1962]·채충식(蔡忠植)[1892~1980]·이상훈(李相薰)·이선장(李善長) 등이 선출되었다.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1945년 9월 4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로부터 건국준비위원회 제1회 위원회 참석 초대장을 받았다.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치안대, 청년부, 교육부, 건설부 등의 부서를 설치하고 건국 활동을 전개하였다. 신철수(辛鐵洙)[1926~1951]를 대장으로 하는 치안대는 치안유지와 안정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청년부는 귀환 동포에게 옷과 음식을 제공하는 구호활동을 폈다. 교육부는 초등 교원 재교육을 위하여 경상북도교육회와 연계하여 교사들에게 교육 이념, 교재 개발, 한글 문법, 역사 등을 연수할 계획으로 교육재교육강습회를 열었다. 건설부는 기계, 화학, 토건 등의 기술 통계와 각 기업의 종업원 수 및 생산 상태 등에 대한 실태 조사를 할 계획이었다.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1945년 10월 1일 미군의 대구 진주 이후 활동이 위축되었다.

[의의와 평가]

건국준비경북치안유지회는 광복 후 대구 지역에서 결성된 최초의 좌우익 연합 정치단체로서 대구에 미군이 진주하기 이전까지 치안 대책을 마련하며 건국 준비에 이바지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