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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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야시굴」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야시골」 국학자료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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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야시골」 대구광역시에서 발행한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
관련 지명 | 야시골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여우|한 여자|양녕대군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 |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야시골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야시골」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야시골[狐谷]과 관련하여 전하여 오는 지명유래담이다. 「야시굴」이라고도 한다.
[채록/수집 상황]
「야시골」은 2002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Ⅱ와 2009년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야시골은 대명동에 있는 대구교육대학교와 남대구우체국 일대의 마을이다. 야시골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약 200년 전 소나무가 우거진 대구의 어느 골짜기에는 여우, 늑대, 토끼 등이 많이 살았다. 인근의 마을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여기저기에 묻어 아이들 무덤을 만들었는데, 여우들이 이 무덤을 파헤치려고 몰려들어 ‘야시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몽유병을 앓고 있는 한 여자가 밤만 되면 무덤 사이를 여우처럼 헤매고 다녔기 때문에 ‘야시골’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설로는 조선시대에 양녕대군(讓寧大君)[1394~1462]이 대구에 왔을 때, ‘뜻대로 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여의곡(如意谷)’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후대에 음(音)이 ‘여의-여수-여시-야시’로 변하여 ‘야시골’이 되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야시골」은 지명 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