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60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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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明洞- 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석배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1년 - 「대명동의 유래」 『한국구비문학』Ⅰ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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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2년 - 「대명동의 유래」 『한국구비문학』Ⅱ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9년 - 「대명동의 유래」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 |
관련 지명 | 대명동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두사충 |
모티프 유형 | 지명 유래담 |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의 지명 유래에 관하여 전하여 오는 이야기.
[개설]
「대명동의 유래」는 대구광역시 남구에 있는 대명동(大明洞)의 지명 유래담이다. 조선 시대 귀화 장군인 두사충(杜師忠)이 대덕산(大德山) 밑으로 집을 옮기고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 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대명동의 유래」는 2001년 국학자료원에서 펴낸 『한국구비문학』Ⅰ과 2002년에 펴낸 『한국구비문학』Ⅱ, 그리고 대구광역시에서 펴낸 『대구지명유래총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은 중국인 두사충과 관련된 지명이다. 두사충은 중국 두릉(杜陵)[두링] 출신인데, 임진왜란(壬辰倭亂)[1592]과 정유재란(丁酉再亂)[1597] 때 우리나라를 돕기 위하여 왔다가 귀국하지 않고 귀화한 장군이다. 두사충은 임진왜란 때 동정제독(東征提督) 이여송(李如松)[?~1598]과 함께 조선을 구하기 위하여 원병으로 왔으며, 정유재란 때도 다시 원병으로 왔다가 조선에 정이 들어 귀화하였다.
두사충이 귀화하자 조정에서는 두사충의 전공을 인정하여 지금의 경상감영공원(慶尙監營公園) 자리를 주어 살게 하였다. 두사충은 경상감영이 자신이 살던 곳으로 옮겨 오자 땅을 모두 내놓고 지금의 계산동으로 옮겨 편안하게 살았다. 그러나 고향에 두고 온 부인과 형제들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최정산(最頂山)[지금의 대덕산] 밑으로 집을 옮기고 고국인 명나라를 생각하는 뜻에서 동네 이름을 ‘대명동’이라고 붙였다. 두사충은 단을 쌓아 매월 초하루에 고국의 천자에게 배례를 올렸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대명동의 유래」는 지명 유래담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