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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5040
한자 體育
영어공식명칭 Physical Education
분야 문화·교육/체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혜경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신체를 단련하고 온전한 운동 능력을 기르기 것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경기 및 활동.

[개설]

체육이란 육체를 단련하여 건강을 유지하고 체력 향상을 도모하는 일련의 활동을 말한다. 대구광역시에서는 대구 시민의 건강한 심신 단련을 위하여 공교육에서부터 체육에 힘써 왔다. 1910년대에 대구 시민들은 친목 도모의 일환으로 체육 활동을 활성화하였고, 선교의 중심지였던 대구광역시에서는 해성학교, 계성학교[1906년], 신명여학교[1907년] 등이 선교사들을 통하여 학교체육을 빨리 받아들였다.

[대구광역시의 체육]

구기 종목으로 가장 먼저 등장한 야구는 대구광역시에 있는 계성학교를 중심으로 보급되었다. 대구광역시에서 진행된 첫 공식 야구 경기는 1914년 가을 도쿄 유학생단과 대구 청년단 간의 경기였으며, 계성학교의 지원을 해성학교가 담당하였다. 야구, 축구 등 구기 종목이 학교에 먼저 보급되었으나, 사회적으로는 유도가 더 빠르게 보급되었다. 대구광역시에 거주하던 유근수가 유도를 보급하여, 대구광역시는 유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대구광역시에서 열리는 대운동회의 효시인 대구시민대운동회에서는 대구공립보통학교[현 대구초등학교], 해성학교, 대남학교, 계성학교, 농림학교 등이 출전하여 학교 대항전이 대규모로 열렸다. 또 1920년 1월 24일에 대구청년회가 발족되어 야구단과 축구단을 조직하고 육상경기 등에 나섰고, 각종 운동회 및 경기회를 열어 대구광역시의 운동 보급에 앞장섰다.

1913년 3월 15일에 사회단체 강의원을 중심으로 애국계몽운동과 교육활동을 병행하는 체육이 행하여졌다. 강의원이 주관한 대구시민운동회가 1911년 가을에 대구광역시 중구에 있는 달성공원에서 열렸다. 그 후 달성공원이 운동회의 장소로 자리 잡으면서 1922년 3월 23일에 대구운동협회가 발족되었고, 달성공원 입구에 자리한 조양회관이 사무실로 쓰였다. 1927년 제1회 대구춘기대운동회는 축제에 가까운 일회성 행사로 마무리되었으나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1935년 제9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 후 1935년 6월 17일에 영남체육회가 발족되어 달성공원에서 보건체조회를 가지고 10월 23일에 전조선씨름대회를 열었다. 그러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시상식 사진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일본은 전국에서 행하여졌던 체육 활동을 탄압하였다. 하지만 영남체육회는 대구축구협회와 통합하여 전조선축구대회를 개최하였다. 일제의 압박이 심해지자 영남체육회는 1939년 10월 17일에 해체하여 조선체육진흥회 스모[씨름]부로 잔류하다가 광복 이후 1949년 1월에 경북체육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 광복 기념 운동회가 열렸다. 1946년 3월 16일과 8월 15일에 마라톤대회가 열렸다. 1946년 5월 6일에 시민대운동회가 개최되었다. 정식 명칭은 제10회 대구대운동회로,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된 체육대회를 다시금 진행하여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조성된 대구부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1946년 대구종합운동장 건설 계획이 발표되고 완공된 뒤 1948년 6월 6일에 시민대운동회가 개최되었다. 1947년 5월 19일에 달성공원에서 반야월~청천의 영천가도 왕복 마라톤 정식 코스를 발표하였다. 이 무렵 서울에서 1946년 10월 27일 단축마라톤 대회를 결성하여 개최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대구가 마라톤의 중심지가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1962년 제43회 전국체육대회 개최지로 대구가 선정되면서 대구종합경기장에서 25개 종목 9,768명의 선수단이 출전하여 대규모의 대회를 마쳤다. 그 후 1963년 5월 19일부터 21일까지 도민체육대회를 개최함으로써 한국 체육의 선도자 역할로 도약하게 되면서 실내체육관 시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1965년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경북체육관[현 대구체육관]을 착공하여 1970년에 개장하였다.

1968년에 대구 지역 체육회를 향토체육회로 통합하여 제49회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한 결과 종합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대구광역시는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준우승을, 1970년 제51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대구광역시에서는 각종 경기대회와 국제대회를 개최하였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축구 예선을 치렀으며, 2002년 한일월드컵 대구 예선경기,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비롯한 수많은 국제행사를 개최하였다.

대구광역시의 체육은 국내 종합 체육대회 및 세계 체육대회를 치를 수 있는 인적·물적 자원이 뒷받침되어 있으며, 세부 경기를 위한 기구와 조직 운영, 대구 시민의 질서의식 등이 갖추어져 있어 여러 체육 경기를 진행함으로써 대구광역시의 발전을 도모하는 데 일조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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