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020 |
---|---|
한자 | 鮮南銀行 |
영어공식명칭 | Sunnam Bank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광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시에 있었던 일본인 자본가 중심 금융 기관.
[개설]
1910년 8월 29일에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후 경제적 침투 거점을 구축하기 위한 첫 단계로 1911년에 「조선은행법」을 공포하고 1912년에는 은행 조례를 폐지하고 「은행령」을 공포하면서 일반 은행의 설립이 본격화되었다. 당시 대구는 대시장[어채시장과 약령시]을 배경으로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구 지역에 은행업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한 일본인 자본가를 중심으로 1912년 9월에 자본금 30만 원으로 지방은행인 선남상업은행을 설립하였다. 선남상업은행은 대구의 일본인 자본가 오쿠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를 중심으로 요시무라 다쯔오[吉村鎭雄]·이토 진자부로[伊藤甚三郞] 등이 주축을 이루었다. 대구의 한국인 자본가인 이병학(李柄學)·장직상(張稷相)·정재학(鄭在學) 등도 주주로 참여하였다.
[변천]
선남상업은행의 경영권을 장악한 오쿠라 다케노스케는 1913년 2월에 은행 상호를 선남은행(鮮南銀行)으로 변경하였다. 선남은행은 대구 지역에서 영업을 개시하였다. 선남은행은 일반은행의 업무를 수행하다 1928년 총독부가 금융제도연구회를 통하여 일반은행 통·폐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구의 경일은행(慶一銀行)과 합병을 추진하였다. 1930년에 일본인이 1920년에 만든 부실 은행인 경상공립은행이 경일은행에 흡수·합병되었으며, 1933년 12월에는 경일은행이 선남은행에 합병되어 대구상공은행으로 개칭되었다. 사실 경일은행은 장길상과 장씨 문중 인사들, 그 밖의 지주 출신 인사들이 출자하여 공칭자본 200만 원과 불입자본 50만 원으로 발족한 민족계 은행이다. 은행장에는 장길상이 취임하였으며 장씨 문중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장씨 문중 은행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1927년에는 영천에 지점까지 설치하였다. 그러나 1928년에 공포된 「신은행령」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민족계 은행을 말살하거나 통합하는 정책을 강행하였으며, 1931년에 일본인 은행장의 취임을 허용하게 되면서 민족계 경일은행은 은행 운영의 실권을 일본인에게 찬탈당하였다.
중일전쟁이 확대되면서 일반 산업에 대한 일제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1941년에 조선상업은행이 대구상공은행을 인수하였다. 조선상업은행은 대구상공은행으로부터 승계한 6개의 점포 중 4개를 한성은행에 인계하였다. 이미 경상은행을 인수한 한성은행은 점포 수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면서 1943년 10월에 은행명을 조흥은행으로 개칭하였다.
[현황]
해방 이후 조흥은행은 1957년 은행 민영화를 위하여 조선제분 윤석준에게 넘어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고 2000년 대우사태와 쌍용양회 부실로 인한 정부의 제2차 금융 구조조정에 따라 신한금융지주사에 매각되면서 조흥은행은 한국 은행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