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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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第一毛織 |
영어공식명칭 | Cheil Industries Inc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중앙대로 591[침산동 10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노광 |
설립 시기/일시 | 1954년 9월 -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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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76년 2월 -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에서 제일모직으로 개칭 |
해체 시기/일시 | 2014년 7월 - 제일모직 해산 |
최초 설립지 |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 -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
성격 | 제조업체 |
설립자 | 이병철 |
전화 | 053-358-7123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 있었던 모직물 제조업체.
[개설]
제일모직은 1954년 9월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로 설립되었고, 삼성그룹 창업자 고(故) 이병철 회장에 의하여 삼성그룹의 모태 기업으로 출발하였다.
[설립 목적]
제일모직은 국민들의 의생활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고 이병철 삼성회장의 경영이념인 사업보국의 기치 아래 설립되었다. 사업보국(事業報國)의 경영이념에 따라 1954년 대구시 침산동에서 시작한 제일모직은 보국의 차원에서 시장의 기회를 포착하여 투자하면서 경영에 성공하였다.
[변천]
1955년 12월 대구시 북구 침산동 일대 7만 5000평 부지 위에 세워진 대구공장은 소모 방적 5천 추, 방모 방적 360추, 직기 50대, 염색·가공 1식 등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자체 기술로 완성된 국내 최초의 소모방 생산공장이다. 대구공장은 이후 소모 방적 5,000추, 1957년 염색 및 즐모 공정, 1960년 소모 방적 5,000추 및 직기와 가공 라인 증설 등을 거쳐 일관 생산체제를 완비하여 삼성그룹 발전의 산실 역할을 하였다. 1956년 1월 첫 생산직 사원을 선발하였으며, 1956년 2월에는 대구공장 건설 당시 가장 먼저 여사원 기숙사를 완공하였다. 1956년 5월 국내 최초의 소모사 브랜드 ‘장미사 505’에 이어 6월에는 모직 국산 양복지인 ‘골덴텍스’ 브랜드를 출시하였다.
제일모직은 국가의 수출진흥 정책에 부응하여 1961년 장미사를 홍콩에 첫 수출하였고, 1962년 이란에 모사 제품을 수출하였다. 1963년 3월에는 싱가포르에 복지 6,000야드를 수출하는 등 우리나라가 섬유 수출대국으로 성장하는 초석을 마련하였다. 1969년 9월 소모방 일변도의 성장 한계를 탈피하기 위하여 1만 추 규모로 화학섬유 폴리에스테르를 생산하는 경산 공장을 준공하였다. 1970년대 초에 불어닥친 제1차 석유파동에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기록하였으며, 1973년 처음으로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하였다. 1976년 2월 제일모직으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1977년 9월 여성복 ‘라보떼‘로 패션사업을 시작하였다. 3년 뒤인 1977년에는 35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1978년 7월 구미 수출산업공단 내의 7만 7000평 부지에 제2 생산기지인 구미 공장을 준공하였다. 이로써 제일모직은 ‘대구 소모방’과 ‘구미 방모방’이라는 2원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었으며, 1982년 국내 소모방 최초로 수출 5000만 불을 달성하였다. 이것은 홍콩에 수출한 이래 21년 만에 이룩한 쾌거이다.
1978년 3월에는 대구 공장 내에 부설 성일여자실업고등학교를 개교하여 종업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1978년 11월에는 여자 탁구단 창단에 이어 1980년 9월에는 사내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하여 사보 『장미』를 창간하였다.
1989년 3월에는 영문 상호를 ‘Wool Textile Co., Ltd’에서 ‘Cheil Industries Inc.’로 변경하였다. 엔진니어링 플라스틱 제품의 본격 출시를 앞두고, 기존 직물 의류 사업과의 연관성 및 지속적인 사업 다각화를 고려한 포괄적인 의미가 있는 상호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1989년 6월 대구공장은 모방(毛紡) 업계 최초로 무재해 2000만 시간을 달성하여 무재해 금탑을 수상하였고, 한국 생산성 대상 시상식에서 종합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이어 1989년 11월에는 모방 업계 최초로 수출 1억 불 탑을 수상하였다.
1993년 3월 이건희 회장은 혁신과 창조로 제2의 창업 제2기 출발을 엄숙히 선언하였으며, 1993년 6월에는 역사적인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하여 세계 초일류 기업을 향한 삼성 개혁과 의식 변화를 주창하였다. 1994년 9월 창립 4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민간 기업 최초로 ‘제일모직 타임캡술’을 대구 공장에 매설하였다. 1996년 6월 중국 진출과 함께 직물 부문 장기 발전 전략의 핵심 프로젝트[G-2000]로 진행된 대구-구미 공장 통합은 직물 생산기지가 있는 구미 골덴패션센터로 통합되면서 대구 침산동 시대는 막을 내렸다.
2003년 8월 옛 대구 침산동 공장 부지에 지방 최초의 오페라 전용 공연장인 대구오페라하우스를 건립하여 대구시에 기증하였다. 대구공장 부지를 창업 연고지인 대구 지역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일모직은 2014년 7월 삼성SDI로 흡수합병되면서 법인이 소멸되었다. 그 후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를 인수한 삼성에버랜드가 2014년 7월 ‘제일모직’으로 사명을 변경하여 계승하였으나, 2015년 9월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하면서 ‘제일모직’이라는 상호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제일모직 브랜드는 2017년 기준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 부문으로 이관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제일모직의 주요 사업은 직물, 패션, 케미칼, 전자재료 부문으로 구성되였다. 직물 사업 부문은 란스미어 220, 골덴텍스, 수퍼블랙, 캐주얼복지, 고기능성 복합 소재 등 최고급 제품을 개발·생산하였다. 패션 부문은 갤럭시, 로가디스, 빈폴, 아스트라, FUBU, SS311, 지방시 등이 있다. 케미칼 사업 부문은 난연 ABS, PC/ABS, 투명 ABS와 같은 고기능성 특수 수지 제품을 생산하였다. 전자재료 사업 부문은 전자파 폐재인 EMS와 2차 전지용 전해액, 반도체용 CMP Slurry 등을 생산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였다.
[의의와 평가]
제일모직은 1938년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삼성상회에서 비롯되었으며, 1954년 제일모직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삼성의 사관학교라고 할 정도로 많은 인재를 양성하였다. 제일모직은 오늘날 글로벌 기업 삼성이 있기까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한국의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제일모직 옛 대구공장인 대구창조경제캠퍼스 내의 삼성존에서는 삼성의 창업 역사를 테마화하여 부지의 역사성 및 정체성을 보여 주며, 기존 본관 건물을 창업기념관으로 개보수하여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대구 지역 창업 생태계를 확산하도록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