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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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雪舟 |
영어공식명칭 | I Seolju |
이칭/별칭 | 이용수(李龍壽),기다사토보엔[北里暮煙]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종헌 |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출생하고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
[개설]
이설주(李雪舟)[1908~2001]는 1908년 4월 12일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원래 이름은 이용수(李龍壽), 일본식 이름은 기다사토보엔[北里暮煙]이다. 1927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 시절인 1934년 8월 일본 문예지 『신일본민요』에 일본어로 쓴 시 「고소(古巢)」, 「닭의 죽음」 등 5편을 본명 이용수로 발표하면서 등단하였으나 본격적인 창작은 해방 이후부터 시작하였다. 1945년~1946년 『민고(民鼓)』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활동 사항]
이설주는 일본 유학 시절인 1931년 5월 1일 메이데이 전단을 뿌리다가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니혼대학 정경과를 중퇴하였다. 이후 10여 년간 만주 지역을 떠돌며 방랑 생활을 하였다.
해방 이후 1946년 조선청년문학가협회가 창립되자 이설주는 이영도·이윤수 등과 함께 가입하였다. 첫 시집 『들국화』를 발행한 민고사는 이설주가 관여한 출판사였다. 부인 서귀희는 대구에서 제일 큰 문화서점을 경영하였다.
이설주는 1947년~1951년에 대구 지역에서 대구여자상업고등학교와 경북여자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53년~1954까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유치환·김용호 등과 함께 『연간시집』을 발행하여 당시의 암울한 시대 정서를 담아냈다.
지금까지 이설주의 등단이 1932년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34년 일본 문예지 『신일본민요』에 일번어로 발표한 시 5편이 『문학사상』[2012년 4월 호]에 공개되어 등단 연도가 분명하게 밝혀졌다.
이설주는 2001년 4월 20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설주는 1947년에 『들국화』를 간행하였고, 만주 생활의 방랑 체험을 중심으로 제2시집인 『방랑기』[1948]를 묶어 냈다. 이설주의 시집은 『잠자리』[1949], 『미륵(彌勒)』[1952], 『유수곡(流水曲)』[1953], 『순이의 가족』[1954], 『수난의 장』[1956], 『애무의 장(章)』[1955], 『세기의 거화(炬火)』[1957], 『낙수인생(落穗人生)』[1957], 『불모의 영토』[1960], 『이승과 저승 사이』[1977], 『휴전선 근처』[1988], 『달맞이꽃』[1989], 『이승에 비낀 노을』[1992], 『잃어버린 세월』[1995] 등이 있다. 또 선시집 『36년』[1968]과 『사랑은 가도』[1970] 등이 있다. 그 외 문고판형 전집 『설주문학(雪舟文學)』[1957]이 있다.
이설주의 작품에는 시대의식이 잘 나타나 있으며 특히 전후 발행한 『수난의 장』은 피난민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전쟁의 참상 등 민족 수난의 모습을 다루었다.
[상훈과 추모]
이설주는 경북문화상, 1986년 제1회 상화시인상, 은관 문화훈장 등을 수상하였다. 이후 한국문인협회에서 2011년 3월 24일 이설주문학상을 제정하였다. 2008년 2월 동구 방촌동 금호강 제방에 「금호강」 시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