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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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漢鍾 |
영어공식명칭 | Yoo Hanjong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성 |
출생 시기/일시 | 1913년 - 유한종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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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5년 - 유한종 해원양성소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35년 - 유한종 조선우선주식회사 기관원으로 근무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 유한종 조선인민당 대구지부 설립준비위원으로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57년 11월 - 유한종 근로인민당 재건 사건으로 구속 |
활동 시기/일시 | 1958년 12월 16일 - 유한종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5월 15일 - 유한종 사회대중당 경상북도당 총무위원 겸 조직위원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60년 11월 27일 - 유한종 사회당 기획위원장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12월 - 유한종 사회당사건으로 징역 7년형 선고 |
활동 시기/일시 | 1967년 - 유한종 신민당 감찰위원회 조사부장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971년 4월 22일 - 유한종 민주수호경북협의회결성준비대회 대표위원 선임 |
출생지 | 동동리 -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총일운동가|정치인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사회대중당 경상북도당 총무위원 겸 조직위원장|사회당 기획위원장 |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통일운동가이자 정치인.
[개설]
유한종(柳漢鍾)[1913~?]은 1913년 지금의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동동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혁신계 정당과 사회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유한종은 1935년 해원양성소를 졸업하고 조선우선주식회사 기관원으로 근무하였다. 1941년 일본 철공회사에 입사하였고, 이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상업에 종사하다가 광복 직전에 귀국하였다. 1945년 조선인민당 대구지부 설립준비위원을 맡았고, 1957년 11월 근로인민당 재건 사건으로 서울시경 사찰과에 연행되었다. 12월 11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1958년 12월 16일 대법원 최종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유한종은 1960년 4·19혁명 이후 혁신정당에 참여하여 5월 15일 사회대중당 경상북도당 총무위원 겸 조직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1월 27일에는 사회당 기획위원장에 선임되었고, 재야 통일운동단체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에서도 활동하였다. 유한종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이른바 사회당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유한종은 출소한 뒤 1967년 야당인 신민당 감찰위원회 조사부장으로 활동하였고, 1971년 4월 22일 민주수호경북협의회결성준비대회 대표위원을 맡는 등 대구 지역에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