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5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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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綠珠 |
영어공식명칭 | Kim Rokju |
이칭/별칭 | 김임전(金任全),김해 김록주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석배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판소리 여성 국악인.
[개설]
김록주(金綠珠)[1898~1928]는 1898년 4월 3일 경상남도 김해의 전통 예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소리꾼 김수룡(金守龍)이다. 김록주의 원래 이름은 김임전(金任全)이고 김해 출신이어서 흔히 ‘김해 김록주’로 불렸다.
[활동 사항]
김록주는 10세 때 김정문에게 소리를 배우고, 1910년대 중반에 송만갑의 지도를 받아 이름을 날렸다. 1918년에는 한남권번 소속이었으며, 1920년대 초에 대구기생조합의 간사로 있었다. 아편 중독으로 요양하던 중 1926년 11월 11일 일동축음기회사에서 개최한 연주회[조선극장]에 출연하며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유성기 음반에 취입하고, 경성방송국 국악방송에도 출연하였다.
김록주는 「춘향가」에 뛰어났으며, ‘사랑가’와 ‘어사또 춘향 문전 당도’가 더늠이다. 제비표조선레코드에 ‘사랑가’, ‘조조 군사 서름가’, ‘중타령’ 등을 남겼다. 성음이 단단하면서도 미려하고, 창법 또한 빈틈없는 짜임에 통성으로 일관하고 극히 절제되어 있었다. 『조선미인보감』에서 “남중잡가(南中雜歌)의 시김새 목과 오장에서 끌어 나오는 단가 목은 과연 희귀한 명창의 명기(名技)”라는 평을 받았다.
김록주는 달성권번에서 소리 선생으로 있던 중 1928년 1월 10일 아편 중독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일제강점기에 취입한 김록주의 음반은 B118 「춘향가」, ‘사랑가’[김해 김록주], B128 「삼국지」, ‘조조 군사 서름가 상·하’[김록주], B135 ‘꽃사거리 상·하’[김록주, 박록주], B160 「심청가」, ‘중타령’[김록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