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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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容直 |
영어공식명칭 | Kwon Yongjik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성 |
출생 시기/일시 | 1915년경 - 권용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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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43년 - 권용직 보성전문학교 상과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1월 15일 - 권용직 사회당 경북도당 입당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3월 - 권용직 사회당 당무부장 겸 경리부장 취임 |
활동 시기/일시 | 1961년 12월 7일 - 권용직 혁명재판소 심판부 제3부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받음 |
거주|이주지 | 덕산동 - 경상북도 대구시 덕산동 262 |
학교|수학지 | 보성전문학교 - 서울특별시 |
활동지 | 사회당 경북도당 -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 |
성격 | 사회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사회당 경상북도당 당무부장 |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개설]
권용직(權容直)[1915~?]은 1961년 사회당 경상북도당의 당무부장으로서 대구에서 이대악법반대운동과 통일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권용직은 1915년에 태어났다. 1943년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한 뒤 조선식량영단 주사, 미군정청 노동국장의 부속실장 및 석탄공사 생산과장·서무과장, 전남병사구사령부 문관 등을 역임하였다. 이후 1961년 1월 15일 사회당 경북도당에 입당하여 3월에 당무부장 겸 경리부장이 되었다.
1961년 3월 21일 대구역 앞에서 사회당 경북도당을 비롯한 11개 혁신정당 및 사회단체가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하여 ‘2대 악법 반대대회’를 개최할 때 권용직도 사회당 경북도당 간부로서 참가하였다.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공동투쟁위원회가 4월 7일 대구시 수성천 변에서 2대 악법 반대 궐기대회를 개최하자 이때도 참가하여 수성천 변에서부터 삼덕로터리를 경유하여 반월당 앞까지 시위를 이어 갔다.
이후 권용직은 1961년 5월 7일부터 10일까지 현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1가에 있던 사회당 경북도당 사무실과 자택에서 사회당 경북도당 주최의 남북학생회담 촉진시민대회를 5월 10일 개최하기로 협의하였다. 계획대로 5월 10일 대구시 만경관 앞에서 ‘남북학생회담 촉진시민대회’가 열리자 권용직은 “남북학생회담이 실천되도록 지지하여 줄 것을 정부에 요청한다. 미국과 소련은 우리나라를 냉전에서 해방시켜 조국 통일을 실현시킬 것을 촉구한다”라는 내용의 결의문을 낭독하였다.
권용직은 5·16쿠데타 이후 체포되어 1961년 12월 7일 혁명재판소 심판부 제3부에서 「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