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4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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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孫湍 |
영어공식명칭 | Son Dan |
이칭/별칭 | 심원(深源),졸암(拙庵),오졸(五拙)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정의]
조선 후기 대구 출신의 문관.
[가계]
손단(孫湍)[1626~1713]의 본관은 일직(一直)이며, 자는 심원(深源), 호는 졸암(拙庵) 또는 오졸(五拙)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전력부위(展力副尉) 손덕운(孫德雲)이고, 할아버지는 단성현감을 지낸 손린(孫遴)이다. 아버지는 손처각(孫處恪)이고, 어머니는 유안(柳安)의 딸 진양유씨(晉陽柳氏)이다. 부인은 이상진(李尙眞)의 딸 영양이씨(永陽李氏)이며, 슬하에 딸만 두 명이라 둘째 동생 손유(孫濡)의 아들 손태기(孫泰基)를 양자로 입양하였다.
[활동 사항]
손단은 1626년(인조 4)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에서 태어났다. 오매정(五梅亭) 손처약(孫處約)[1556~1618]에게 수학하고 1660년(현종 원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1667년 사헌부감찰, 성균관전적을 역임한 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낙향하였다. 1673년 연서찰방(延曙察訪)을 거쳐 1674년 고성현령(固城縣令)이 되었고, 이후 경주제독이 되었다. 1689년(숙종 15) 영일현감에 제수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나 무고로 파직되었다. 1711년에는 향인(鄕人)들이 기로회(耆老會)를 만들어 주는 등 지역 유림으로부터 추앙을 받았다. 손단은 1713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손단은 재종 숙부인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의 「유사(遺事)」를 정리하여 17세기 지역 유학 진흥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남겼다. 고계(古溪) 이휘령(李彙寧)[1788~1861]의 묘갈명에 따르면, 손단의 유집 약간이 전한다고 하였지만 현재 확인되지 않는다.
[묘소]
손단의 묘소는 정간(鄭榦)의 『명고집(鳴皐集)』에 수록된 「행장」에 따르면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한정리에 있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