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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129
한자 大邱 蓮湖洞 墳墓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 산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조선시대 - 대구 연호동 분묘군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10월 7일~11월 22일 - 대구 연호동 분묘군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연호동 분묘군 -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 산8 지도보기
성격 분묘군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에 있는 조선시대 분묘군.

[개설]

대구 연호동 분묘군삼덕동~시지택지 간 도로 건설에 앞서 1998년 10월 7일부터 1998년 11월 22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토광묘 29기가 확인되었고, 분청사기와 청동제품, 관정(棺釘) 등 108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위치]

대구 연호동 분묘군이 있는 연호동은 대구광역시 남동부의 동부 구릉지로 남동쪽의 병풍산[523m]과 대덕산[599.4m]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낮은 능선과 능선 사이의 곡부에 해당된다. 남부정류장에서 경산 방향으로 오면 연호네거리가 있는데 연호네거리에서 남쪽으로 이동하면 연호마을과 연호내지(蓮湖內池)가 있다. 대구 연호동 분묘군연호내지 동쪽의 능선 사면부에 있다.

[형태]

조선시대 토광묘는 대부분 평면형태의 경우 장방형을 띠며, 등고선 방향과 직교되도록 배치되어 있다. 29기 중 관재(官材)나 보강토(補强土), 널[목관(木棺)]의 부식 흔적과 관정의 출토 현황 등을 판단하면, 20기의 토광묘에서 널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널의 규모는 길이는 150㎝~200㎝, 너비는 40㎝~50㎝이다. 출토 유물은 자기류 39점, 청동숟가락 16점, 관정 46점, 구슬 4점, 유리제 비녀 1점, 토제 장신구 1점, 동전 1점 등 총 108점이 출토되었다. 자기류 중 분청사기는 대접 12점, 접시 12점, 종지 2점, 사발 1점 등 27점이다. 백자는 접시 6점, 대접 4점, 종지 1점, 사발 1점 등 12점이다. 유물 중 주목되는 것은 19호 토광묘에서 출토된 '숭녕통보(崇寧通寶)'라는 명문이 있는 동전이다. ‘숭녕(崇寧)’이라는 연호(年號)는 중국 송나라 시대인 1102~1106년까지 사용되었다. 함께 출토된 분청사기와는 300년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어 오랫동안 동전이 전세(傳世)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관정은 46점으로 많은 수량을 보이고 있으나 관정이 출토된 무덤은 5기에 불과하다. 당시 목관에 관정의 사용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황]

대구 연호동 분묘군은 발굴 조사 완료 후 도로가 건설되어 유적의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조사 지역 동쪽으로는 능선 사면부가 원형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되는 분묘군이 더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의의와 평가]

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 일대에서 문화유산의 존재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연호동에서 조선시대 무덤군이 확인된 유일한 사례이다. 대구 연호동 분묘군에서는 다양한 분청사기와 백자, 청동 제품 등이 출토되어 조선시대 부장 유물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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