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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78
한자 新塘洞 石長丞
영어공식명칭 Sindang-dong Seokjangseung
이칭/별칭 신당동 장승비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서대로 675[신당동 676]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12월 5일연표보기 - 신당동석장승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21년 6월 29일 - 신당동석장승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계명문화대학교 -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서대로 675[신당동 676]지도보기
성격 장승
크기(높이,둘레) 212㎝[높이]|30㎝[너비]|15~17㎝[폭]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조선시대 돌장승.

[개설]

장승은 마을, 절 입구, 길가 등지에 세운 사람 머리 모양의 기둥인데, 전국에 분포하며 지역 간의 경계 표시, 이정표,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한다. 돌이나 나무로 만드는 장승은 보통 남녀 쌍으로 세우며, 남자 상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여자 상은 관모가 없다. 하부 전면에는 장승의 성별에 따라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등의 글씨를 새겼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신당동석장승은 조선시대에 돌로 만든 장승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예전에 양산골이라 불렸던 마을의 절 입구에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보아 본래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사찰 장승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비’라고도 부르는데, 코 부분이 깨어져 나가고 손에 여의주봉을 든 것으로 보아 후대로 내려오면서 다산과 가정의 평안을 비는 등 민간신앙화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1986년 12월 5일 대구광역시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신당동석장승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서대로 675[신당동 676]에 있다.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동쪽의 계명문화대학으로 이어지는 도로 오른편에 있다.

[형태]

신당동석장승은 높이 212㎝, 너비 30㎝, 폭 15~17㎝이며, 네모난 화강석 돌기둥 한 면을 음각과 양각으로 다듬어 얼굴과 몸체을 새겼다. 보통 몸체 전면에 글을 새긴 경우가 흔한데, 신당동석장승에는 이러한 기록이 없다. 머리에는 탕건 형태의 모자 모양을 조각하고, 얼굴에는 눈썹·눈·코·입을 새겨 놓고 볼은 도톰하게 강조되었다. 코는 약간 떨어져 나갔고, 입은 약간 웃는 듯한 모습의 대략적인 윤곽만 확인된다. 손에는 여의주봉을 들고 있다.

[현황]

신당동석장승은 양산골이라 불렸던 마을의 절 입구에 세워져 있었는데, 주변에 계명대학교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계명문화대학교 부근에 보존·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당동석장승은 대구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돌장승이며, 가정의 평안 등을 비는 민간신앙적 기능과 경계 표시를 복합적으로 담당하는 장승 신앙을 잘 보여 주는 민속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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