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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12
한자 大邱 上洞 遺跡三
영어공식명칭 Daegu Sang-dong Yujeok3|Archaeological Site 3 in Sang-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62-11|상동 162-12
시대 선사/청동기,고대/남북국 시대,조선/조선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1월 9일~3월 6일 - 대구 상동 유적3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원소재지 대구 상동 유적3 -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62-11 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 남북국시대, 조선시대의 생활 유적.

[개설]

대구 상동 유적3은 대구한의대학교 한방지원센터 증축을 앞두고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6년 1월 9일부터 2006년 3월 6일까지 진행한 조사에서 발굴한 생활 유적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62-12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유물 포함층이 확인되었고, 함께 진행한 상동 162-11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2기, 남북국시대 우물 1기, 기둥구멍 1개, 조선시대 수혈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유물은 세 귀 달린 뾰족바닥 토기[三耳附尖底鉢] 1점을 비롯하여, 토도류 107점, 옥석류 8점, 금속류 2점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상동 유적3이 있는 상동은 대구광역시와 청도군의 경계에 있는 삼성산, 봉화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신천 중하류 지역 동안의 충적지에 해당한다. 신천 중하류 지역 동안과 서안의 충적지에는 선사시대 이래 유적이 다수 확인되고 있어 ‘신천변 유적’으로 통칭되고 있다. 상동 전 지역이 신천변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으며, 유적의 북동쪽으로 청동기시대 이래 생활 유적이 확인된 상동 우방아파트 조성 부지 유적과 상동 수성초등학교 현대화재 개발 부지 유적, 상동 지석묘2, 상동 지석묘3이 잇닿아 있다.

[형태]

대구 상동 유적3의 청동기시대 1호 집터는 벽면을 따라서 강돌로 돌담을 쌓은 집터인데, 일명 ‘돌담형 수혈 집터’로 불린다.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부여 송국리 유적식 집터에 2~3단 강돌을 돌려 쌓은 제주 남제주화력발전소 부지 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2호 주거지는 사각형을 띠며, 상부에 다량의 깬돌이 확인되었다. 집터에서는 골아가리토기를 비롯한 민무늬토기 조각과 붉은간토기 조각이 다수 확인되었고, 반달돌칼과 찍개 등의 석기가 확인되었다. 그중 1호 집터에서 출토된 세 귀 달린 뾰족바닥 토기는 모양과 붉은 칠, 아가리의 처리 등이 신석기시대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신석기시대 말기와 청동기시대 초기가 겹치는 시점에 만들어진 유물로 판단된다. 유사한 모양의 유물은 대구 대봉동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현황]

대구 상동 유적3의 발굴 조사가 완료되고 나서 대구한의대 한방지원센터가 건립되었다.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석축을 쌓아 만든 돌담형 집터는 학술적·자료적 가치가 매우 크고, 보존 가치가 있으므로 부지를 마련하여 이전·복원하여야 한다는 조사 당시 지도위원들의 의견에 따라 현재 국립대구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이전·복원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상동 유적3은 소규모로 조사된 청동기시대, 남북국시대, 조선시대 생활 유적이다. 그중에서 청동기시대 1호 주거지의 경우 집터 축조에서 새로운 형태인 돌담형 집터가 확인되었다는 점과 기존의 송국리식 집터 등 한반도 내 주거 문화의 전파 경로 연구와 더불어 서북 지역의 주거 문화의 전파 경로를 연구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출토 유물을 통하여 신석기시대 말과 청동기시대 초에 대한 연구 자료가 확보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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