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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천동 유적5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46
한자 大邱 佳川洞 遺跡五
영어공식명칭 Daegu Gacheon-dong Yujeok5|Archaeological Site 5 in Gacheon-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541-12|가천동 544-1|가천동 347-1
시대 고대/삼국 시대,조선/조선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2년 3월 30일~10월 8일 - 대구 가천동 유적5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소재지 대구 가천동 유적5 -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541-12|544-1|347-1지도보기
성격 생활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과 조선시대 고분 및 생활 유적.

[위치]

가천동 유적5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541-12, 544-1, 347-1번지 일대에 있다. 천을산[해발 156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구 가천동 유적5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3월 30일부터 10월 8일까지 진행한 다섯 개 지구의 발굴조사 중 제5지구에 해당하며, 초기 국가 시대 널무덤[木棺墓], 삼국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 조선시대 널무덤[木棺墓, 土壙墓], 집터, 물막이 시설, 노(爐) 시설[불을 피우는 시설], 구상유구가 조사되었다.

[형태]

대구 가천동 유적5에서 초기 국가 시대 널무덤은 4기가 조사되었는데, 모두 등고선 방향과 직각으로 교차하도록 조성되어 있다. 묘광 크기는 길이 254~311㎝, 너비 93~135㎝, 깊이 25~75㎝ 정도로 얕은 편이다.

요갱(腰坑)[죽은 이의 허리춤 부근 아래 땅을 파서 만든 둥근 구덩이]은 2호 널무덤에서만 확인되었으며 전체적으로 잔존 깊이가 얕다. 유물은 충전토, 목관 내부, 목관 외부, 요갱 등에 묻혀 있는데, 충전토 내에는 토기류가 출토되었고 목관 내부 및 외부, 요갱 등에서는 토기 이외의 유물, 즉 철기, 청동 제품, 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은 4기가 조사되었는데, 3호는 사각형이고 나머지는 직사각형을 띤다. 직사각형의 돌덧널은 판돌을 이용하여 세워쌓기와 눕혀 쌓기로 축조하였고, 사각형의 돌덧널은 깬돌을 이용하여 주로 눕혀 쌓기로 축조하였다.

조선시대 분묘는 널무덤은 43기가 확인되었고, 생활 유구로는 집터 3기, 물막이 시설, 노 시설, 구상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집터는 사각형에, 화덕자리와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다.

[출토 유물]

대구 가천동 유적5의 초기 국가 시대 널무덤에서는 조합 쇠뿔손잡이단지[組合牛角形把手附壺], 두귀달린항아리[兩耳附壺], 자루 모양 단지, 작은 단지[小甕], 굽다리접시[豆形土器], 따비, 낫 모양 철기, 재갈, 투겁창[鐵矛], 도끼[鐵斧], 청동 제품, 구슬 등이 출토되었으며, 목기의 흔적도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돌덧널무덤에서는 뚜껑달린굽접시[有蓋高杯], 굽다리목긴겹아가리항아리[附加口緣臺附長頸壺], 무른 항아리[軟質甕] 등이 출토되었다.

조선시대 널무덤에서는 일부 묘에서만 백자와 청동숟가락 등이 출토되었고, 집자리에서는 독(甕) 조각이 확인되었다.

[현황]

대구 가천동 유적5 발굴 조사가 끝나고 나서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비탈면과 능선에 동일한 유적이 연속하여 조성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의의와 평가]

대구 가천동 유적5에서는 초기 국가 시대 널무덤, 삼국시대 돌덧널무덤, 조선시대 널무덤이 함께 조사되었다. 초기 국가 시대 3호 널무덤에서 출토된 굽다리접시는 대구 팔달동 50호 출토 유물과 비슷하고, 청동 교구는 경주 사라리 130호 출토 유물과 비슷하다. 유물을 통하여 주변 지역과의 교류 관계를 엿볼 수 있으며, 가천동 일대가 초기 국가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무덤이 축조되는 공간으로 이용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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