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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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舊石器時代 新石器時代 遺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김병섭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확인된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 유적.
[개설]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는 지질사적으로 갱신세(更新世)[Pleistocene]에 속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260만 년 전부터 12,000년 전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며, 이 때 지구의 기후는 추워져 흔히 빙하시대라고 부른다. 구석기시대의 편년은 주로 지질학적인 구조, 기후와 연관된 퇴적학적인 주기, 절대연대 그리고 석기의 기술적인 발전을 토대로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
[구석기시대 유적]
대구 지역에서 확인된 구석기 유적은 대구 월성동 구석기 유적이 유일한 사례이다. 월성동 구석기 유적은 대구분지 남서쪽 진천천 하류역 형성된 월배 선상지 선단부에 있다. 1만 3175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좀돌날의 출토 비율이 가장 높아 후기 구석기 시대 좀돌날을 중심으로 한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밝히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흑요석 원산지 분석 결과 백두산이나 일본 규슈 지방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한반도 내 알려지지 않은 흑요석 산지에서 유래되었거나 구석기인들의 이동이나 교류의 결과로 한반도 외부에서 들여왔을 것으로 파악되었다.
[신석기시대 유적]
신석기시대(新石器時代)는 가축화된 동물과 농경의 시작, 간석기[磨製石器]와 토기가 등장하는 시기이며, 지질학적으로 전신세(全新世)[Holocene]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구미(歐美) 학자들은 20세기 전반부터 농경의 출현을 신석기시대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반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1990년대부터 토기의 출현이 갱신세 말까지 소급되는 증거가 다수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구석기·신석기시대의 경계가 토기의 출현에 있다고 본다. 대구 지역을 비롯한 영남내륙지역은 중부 지역과 문화적 구분이 이루어져 있다. 이른 시기에는 청도 오진리 바위그늘 유적과 같이 소규모의 주거 형태가 유지되다가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 토기의 확산 과정에 맞추어 대규모 취락들이 등장하여 후기까지 전통이 이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내륙지역 취락들의 기본적인 생업 형태는 수렵과 채집을 주 기반으로 하고 어로와 농경을 병행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광역시에서 발굴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서변동 유적, 대봉동 유적, 대천동 유적, 유천동 유적, 대림·사복동 유적 등이 있다. 서변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1기와 집석유구 4기, 수혈유구 1기가 확인되었고, 다양한 문양의 빗살무늬토기와 겹아가리토기[二重口緣土器], 식량가공구와 굴지구가 출토되었다. 대천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1기가 확인되었고,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과 찌른무늬[刺突文]의 빗살무늬토기와 겹아가리토기가 출토되었다. 유천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2기와 야외화덕자리 6기, 집석유구 3기, 수혈유구 43기가 확인되었고, 굵고 깊은 선무늬[太線沈線文]와 빗금무늬의 빗살무늬토기와 갈돌, 갈판 등이 출토되었다. 대봉동 유적에서는 집자리 2기가 확인되었고, 짧은 빗금무늬[短斜線文], 빗금무늬, 비스듬한 바둑판무늬[斜格子文]가 그려진 토기가 출토되었다. 대림·사복동 유적에서는 수혈 3기와 집석 1기 확인되었고, 유물은 빗금무늬, 비스듬한 바둑판무늬가 새겨진 토기가 출토되었다. 대구광역시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모두 강변의 넓은 충적대지에 입지하며, 주거지가 조성된 주변으로 수혈과 같은 야외 저장시설나 야외 화덕자리가 분리 조성되어 있는 특징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