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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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尾 善山邑 金銅菩薩立像(1976-1) |
영어공식명칭 | Gumi Seonsan-eup Geumdongbosaripsang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2리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박병선 |
제작 시기/일시 | 7세기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제작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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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발굴 시기/일시 | 1976년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출토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4월 23일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국보 제183호로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장처 |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
출토|발견지 |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출토지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2리 |
성격 | 불상 |
재질 | 금동 |
크기(높이) | 높이 32㎝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국립대구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국보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에 있는 삼국시대 후기의 불상.
[개설]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龜尾善山邑金銅菩薩立像)(1976-1)은 1976년,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봉한2리에 해당하는 경상북도 선산군 고아면 봉한2리에서 공사를 하던 중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국보 제182호],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국보 제184호]과 함께 출토되었다. 주변에서는 삼국시대의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들이 많이 출토되어서 원래 절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은 삼국시대 후기 금동보살상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주는 매우 우수한 작품이다. 보살상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대좌(臺座) 위에 오른쪽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자연스럽고 유연한 자세로 서 있다. 1976년 4월 23일에 국보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70에 있는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
높이 32㎝의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은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화관의 정면에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어 이 불상이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눈·코·입의 표현이 분명한 얼굴은 둥근 편이며, 미소를 띠고 있다. 신체는 비교적 날씬한 편이고 균형이 잘 맞으며, 법의(法衣)는 몸에 얇게 밀착되어 있다. 법의의 자락은 오른팔에 한 번 걸쳐 무릎 앞에서 둥글게 드리워지고, 다시 왼팔 위로 걸쳐 그 끝이 대좌 위로 내려뜨려졌다. 목에는 구슬 장식 목걸이가 걸려 있으며, 어깨에서 시작한 구슬 장식 목걸이는 길게 늘어져 엑스(X) 자를 그렸다. 오른손은 위로 들어 연꽃 봉오리를 가볍게 들고 있으며, 왼손은 내려서 물건을 잡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으나 물건은 없어진 상태이다. 대좌는 칠각형이며, 그 위에 두 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뒷면에도 앞면처럼 구슬 장식 목걸이가 교차되었고, 법의의 주름도 정성껏 표현되었다. 광배가 달리던 꼭지가 남아 있다.
[특징]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은 중국 수나라 때의 금동보살상 양식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작 연대는 대략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또한 출토지가 신라 영토였던 경상북도 선산군이라는 점에서 신라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양식이 비슷한 불상으로는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에서 출토된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 두 구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불상을 들 수 있는데, 보주를 들고 서 있는 자세나 구슬 목걸이 장식 등 형식면에서는 기본적으로 같은 계통이다. 그러나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이 더 발전된 양식을 보여 주며 기법 면에서도 훨씬 더 정교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은 삼국시대의 신라 조각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수한 조각 솜씨를 보이고 있어, 삼국시대 후기의 신라 조각 중 대표적이고 중요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