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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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主靑年同盟 大邱市委員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설립 시기/일시 | 1946년 4월 21일 -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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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대구극장 -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 |
성격 | 청년단체 |
[정의]
1946년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민주주의민족전선대구시위원회 소속 청년 단체.
[설립 목적]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民主靑年同盟大邱市委員會)는 민주주의 통일 정권 수립을 촉진시킬 목적으로 혈기 넘치는 청년의 단결과 규합을 도모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준비위원회는 1946년 4월 21일 대구극장에서 결성 대회를 열고 민주주의민족전선대구시위원회의 산하기관으로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의 대표는 이완구(李完求)가 맡았다.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는 대구에서 가장 대표적인 좌익계 대중운동 조직이었다. 민주청년동맹 경북도위원회의 위원장은 김관제(金寬濟)의 아들 김동찬(金東燦)이 맡았다.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의 결성 대회는 1946년 4월 25일 서울 견지동 시천교당(侍天敎堂)에서 열린 ‘조선민주청년동맹 결성 대회’의 식순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곧 개회 선언, 묵념, 「애국가」 제창, 민주청년동맹기 입장, 개회사, 임시 집행부 선거를 한 후 경과보고, 축사, 정세 보고, 강령 규약 통과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6년 12월 27일 서울 경운동 천도교 강당에서 열린 조선민주청년동맹임시전국대회에 참가하고, 긴급동의를 채택하였다. 조선민주청년동맹임시전국대회에서는 조직 확대 강화에 관한 건과 기관지 발간, 그 외 사항을 토의하였고 긴급동의로 세계민청원에게 보내는 메시지, 이주하 체포 취조와 박헌영 체포령에 대한 하지 장군에게 보내는 메시지, 국대안 반대, 대구사건[10월항쟁] 사형자 반대, 혁명가의 무조건 석방, 입법기관 반대 등을 결의하였다.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는 1947년 3월 14일 오전10시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 회원과 일반 청중 약 2,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임시 대회를 열었다. 임시 대회는 「애국가」 제창, 「해방의 노래」, 「민주청년동맹가」를 부른 후, 대의원 자격 심사 보고에 이어 민주청년동맹기 입장과 폐회사가 있었다. 그 뒤 임시 집행부를 선출하고 정세 보고, 사업 보고, 개정 규약 낭독, 임원 선거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민주청년동맹은 1947년 5월 17일 미군정 당국으로부터 테러가 감행되었다는 이유로 행정명령 제2호로 해산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민주청년동맹과 민주청년동맹의 우호 기관들은 미군정에 해산명령 철회를 요구하거나 항의 방문을 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의의와 평가]
민주청년동맹 대구시위원회는 민주주의민족전선 산하기관으로 좌익 계열 대중운동의 대표적 단체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