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2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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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勞動者協義會[近代]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서 기독교계 청년·학생들이 조직한 노동 단체.
[개설]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는 공산주의 사회 실현을 궁극의 목적으로 하는 혁명적인 노동조합 운동 단체이다. 1932년 9월 조직을 결성하였으나 1933년 3월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를 조사하던 중 일제에 발각되어 본격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고 와해되었다.
[설립 목적]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는 조선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고, 노동자를 획득하여 산업별 혁명적 노동조합을 조직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변천]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는 1932년 9월 조홍기와 유차을이 이재복의 집에서 ‘동지를 획득하여 공산주의 운동의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뜻을 모으면서 시작되었다. 이재복은 김병창·최문식·김호상을, 조홍기는 박몽득·박봉숙을 동지로 획득하였다. 이재복 등 8명은 1932년 9월 20일 대구기독교청년회 회관에서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를 조직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는 비밀결사 결성과 함께 조직과 부서를 설정하였다. 책임자에 유차을, 서기장에 이재복, 조직책인 오르그(Organizer)에 최문식을 선출하고, 나머지는 집행위원으로 하였다. 부서는 계획 부문과 전문 부문 등 두 개 부문으로 나누었다. 계획 부문에는 조합정리부·종교부·학생부·실업부·부인부·청년부·소년부를 두고, 전문 부문에는 정치교육부·선동선전부·재정부·출판부·구제부·조사정보부·지지회·자위단·연락부를 두었다.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는 1932년 12월 13일 제2회 집행위원회를 열고, 기관지 『대구노동자협의회』와 『년말 깜빠냐(Kampanya)』를 발행하였다. 기관지의 주요 내용은 일제의 만주 침략,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에 따른 조선의 실상 등의 본질을 폭로하고 애국부인회 등 친일단체를 성토하는 것이었다. 또한 대구의 노동자 및 무산대중의 계급의식을 고양하고, 아울러 무산대중이 혁명의 대오에 나설 것을 선전·선동하는 것이었다.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는 1933년 2월 제3회 집행위원회 및 연구회를 개최하고 기관지의 출판 발행과 조직 확대 방안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1933년 3월 17일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를 조사하던 일본 관헌에 발각됨으로써 준비회 단계에서 좌절되었다. 1933년 11월 8일 대구 지방법원에서 유차을은 1년 6개월, 이재복·조홍기·김병창은 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의의와 평가]
대구노동자협의회[근대]는 1932년 대구 기독교계의 청년·학생들이 혁명적 노동조합을 건설하여 조선의 독립과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한 혁명적 대중 조직이며, 1930년대 전반 민족운동의 고양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