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C03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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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대구인줄 알고 시집 온 산호댁
[자손 귀한 조씨 가문으로]
1953년 김천이 고향인 이정남은 정대1리 한더미 마을 거주하는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였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남편에 대해 중매쟁이대구 산다는 이야기만 하였다.
그런데 중매하는 양반이 그래 인자 우리 이가 양반인데. 그때 시절에는 내나 육이오사변이 나고 정전이 되가지고. 우리 양반이 양가에 아가 없으신기라. 그래가 자손 많은 사람. 우리 친정은 팔남매고. 그래인자 자손 흔한 사람 구한다고 그래가지고 우리 시어른이 그래 나를 구했어예.
자손이 귀한 남편 집안은 자손이 흔했던 집안의 사람을 며느리로 들이기를 원하였다. 중매쟁이를 통해서 찾은 그녀의 집안은 8남매의 다복한 집안이었다.
우리 시숙 양반이 계싰는데 고마 전사 당하고. 그래노이 우리 양반이 독시(독자)라. 그래가이고 우리 시모가 자꾸 손자 마이 보기를 원을 해가지고. 그래 아들 너이, 딸 서이, 칠남매를 낳았어. 딸은 다 대구 있고, 아들 하나 대구 있고. 마캉 구미도 있고 머 저 수원도 있고.
전쟁에 장남을 먼저 보낸 시어른들에게 남편은 독자였다. 대가 끊기는 것을 걱정한 시어른들은 다복한 집안의 며느리를 들여 손자들을 많이 낳기를 원하였다. 그 뜻에 따라 그녀 또한 7남매를 낳았다.
[한덤이는 멀고도 무서웠다]
중매쟁이를 통하여 처음 남편을 소개받았을 때 그녀가 들었던 이야기는 ‘대구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결혼 후 시댁에 도착하기까지 그녀는 자신이 대구로 시집간다고 생각하였다.
대구라고 왔어요. 대구라고 왔는데. (시집 올 때) 그때는 길도, 도랑을 밋번 건넜어예. 오니 무섭습디다. 아이고. 결혼식은 김천서 하고. 우리 친정서 하고. 고래 신행만 떠나고. 김천서 버스타고 대구 와가지고. 대구서 여 오는 버스가 없어가지고 아이고 애를 묵었어요. 애를. 대구 봉덕동서 자고, 아는 일가 양반집에서 자고. 내가 이 얘기를 할라카면 마을 못해요.
대구라 생각했던 시집은 가는 길도 멀고도 무서운 곳이었다. 대구에 도착한 버스는 한덤이로 가는 버스가 없어 친척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후 파동까지 오는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부터 걸어서 새색시는 한덤이로 올라갔다. 도랑을 몇 번 건넜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출발했던 신행길은 저녁이 되어서 도착했다고 한다. 그렇게 처음 시댁 오는 날 이곳이 대구인가 싶었다.
[20명의 식구들 서말치 솥에 밥을 하고]
시댁에는 시어른 4분, 시동생 3명, 머슴 2명, 그리고 그녀 부부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활하였다. 아이들이 하나둘 태어나기 시작한 이후에는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였다. 산골 살림이지만 머슴 2명을 거느리는 비교적 큰살림이라 밖에서 일을 할 시간은 없었다.
이기 큰집인데. 보리쌀 씻어가 밥하이. 얼매나 밥을. 한 솥을 하면서 서말치 솥에 해. 일이 얼매나 많노. 나 뭐 일이라면 몸서리가 난다. 어떨 때는 밤이 날이 새는 걸 몰라요. 낮에 이래 앉을 여가가 없어요. 밥만 안 무만. 밥 물라고 앉지. 그랬어예. 보리밥은 시간도 많이 걸리예.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물을 긷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대식구들을 위한 밥을 준비한다. 20명이 넘는 식구들을 위한 밥은 큰솥을 가득 채워도 모자란다. 식구들 빨래와 옷을 꿰매는 일 그리고 잡다한 집안 일 등 밤이 새는 줄, 하루가 지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맘 편히 앉을 시간도 없었다.
[여 사람 사는 줄 모른다 카잖아]
한덤이 정대1리 자연마을 중에서도 가장 오지 마을이다. 헐티로에 인접한 배정에서 한덤이까지 오는 시간은 걸어서 약 50분, 자동차로는 20분 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길도 구르마 길을 안 딱아 놨을 때는 이래 지내가도 지금 쉐맨(시멘트) 안 했을 때는 여 사람사는 줄 모른다 카잖아. 그래도 도부재이(방물장수)가 오데요. 그 아저씨 고기도 팔러 오고.. 생선 같은거. 자전거에 실고 그래오고 이란다.
마을을 찾아 가는 길 이곳에도 마을이 있을까 생각이 들 때 비로소 보이는 곳이 바로 한덤이이다. 과거 찾아 오는 사람들이 ‘여기도 사람 사는 줄 몰랐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그래도 때가 되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부재이로 불리는 방물장수는 시장에 가기 어려운 한덤이 사람들의 소식통이자 이동하는 슈퍼마켓이었다. 머리에 봇짐을 지는 것이 아니라 자전거에 필요한 물건과 산골 마을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생선을 싣고 도부쟁이들은 한덤이를 정기적으로 찾았다.
[정보제공자]
이정남(1932년, 여, 달성군 가창면 정대1리 한더미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