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C03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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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歸鄕- 里長-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마을/마을 이야기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여수경 |
[정의]
귀향과 함께 이장을 맡다
[김해김씨 삼현공파 김주의 10대손]
정대1리 이장 김장생은 바깥매남에 정착한 매계 김주 선생 김해김씨 삼현공파 안매남 입향조 김주의 10대손으로 1940년 정대1리 바깥매남에서 태어났다.
내게 10대조 할아버지가 여기로 왔거든. 10대조가 여기 정착할 때 저기에 맨 위에 집인데 거기 정착할 때 여기 무인지대였어요. 무오사화 난리 나고 피난을 여기로 왔거든, 그때 여기 부락 전체가 무인지대였는데, 그때 삼부자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그리가 피난을 왔거든. 그리가 여기 오니 저기 와서 막 짓고, 그래가 사람이 안다니가 피난하기 좋다고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난리통에 와서 피난하기 좋다고 해가지고 여가 온 게 지금으로부터 435년 전이라.
20여 가구 거주했던 바깥매남은 김해김씨 집성촌이었으며, 지금도 일부 집들은 친인척 관계로 구성되어 있다.
[수성구청 공무원 퇴직]
산골마을 어려웠던 살림에 일찍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바깥매남 마을의 큰집에서 막내로 태어났던 아버지는 큰집에서 별로 가진 것 없이 독립하였다. 하지만 자식들을 공부시키는 것에 소홀함이 없었으며, 정대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찍이 대구로 나가 공부를 마쳤다.
집 그게 저의 큰 집이고, 아래채를 지었는기 우리 어른한테 우리 어른이 저집에서 막내이였어요.
학교를 졸업 한 뒤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고 대구광역시 수성구청 공무원으로 일하였다. 1998년 12월 31일 공무원으로 퇴직하였다. 자식들은 서울과 대구 등 각자 자신들의 위치에서 결혼하고 자리를 잡았고, 이제 편안한 삶을 위하여 대구에 정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물려 준 집이 정대1리에 위치하였고 그것을 버릴 수 없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이) 살림 났는 집이 있어가지고 그걸 관리할라고. 사실 건강도 안 좋고 공무원 하면서 건강도 안 좋고 해가지고 버릴라켔는데. 아깝고… 그래가지고 안사람은 안 들어오고 저도 저 혼자 있습니다.
도시 생활에 익숙한 부인은 대구에서 생활하고 그 혼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도한 일주일에 3~4번은 대구의 집을 오가며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1년 임기는 계속되다]
고향에 돌아올 당시 이장을 맡을 생각이 없었다. 대구와 가창을 오가던 그에게 고향은 단순히 집을 관리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서울과 대구에서 생활하며 혼자 돌아왔다.
아들하고는 다 서울에 있습니다. 저 혼자 있는데. 그 다음에 2001년도부터 제가 동네 일을 자꾸 정리차원에서 젊은 사람도 없고 정의 차원에서 동네일을 하면 안되겠나 해가지고
마을에 젊은 사람은 없고 각종 일들을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무원으로 퇴직한 그는 이장으로 적임자였다. 그렇게 이장으로 추대되었고, 2001년 그는 1년만 하겠다는 생각에서 이장직을 수락하였다.
그러구로 횟수로는 16년 17년 넘었습니다. 내가 한해만 한다는 것이 했는데 그 다음에는 바톤을 받을 사람이 없는라예. 이장을 16년 했습니다. 지금 경로회장까지 맡고 있는데 사람이 없거든요.
1년을 담보로 시작된 이장은 2016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정대1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에 정보제공자로서 ‘김장생’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이해된다. 2015년에는 정대1리 노인회장까지 겸직하고 있다.
[잊을 수 없는 태풍 매미의 피해]
2001년 이장을 맡고 2003년 입은 태풍 매미는 그에게는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되었다. 대구 아파트 집에서 제사가 있어 제사를 지낸 뒤 하룻밤 머문 뒤 마을로 돌아가고자 했지만 밤에 몰아치는 비바람에 마을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사를 부랴부랴 지낸 후 태풍이 몰아치는 밤에 올라갈려고 하였지만 못하고, 태풍이 지난 새벽에 차를 몰고 서둘러 마을로 향했다.
매미 오는 밤에 마침 제가 양력 9월인가 그랬는데 대구에 제사가 있어가지고 밤에 못 올라오고 새벽이 올라오니까 차가 못 올라왔어요. 그래가 중간에 걸어왔어요. 저 오동까지만 오고 걸어 올라왔어요.
가창에서 청도로 향하는 헐티로는 입구 오리에서 이미 차량이 통제되었다. 차를 가지고 오지 못하고 걸어서 마을로 향했다. 용계천을 건너는 60년대 건립된 바깥매남교는 많은 물과 토사로 인하여 금이 가고 그 피해가 막심하였다. 태풍이 지난 아침 가창면사무소에서 피해조사를 위해서 올라왔다. 그렇게 일주일을 조사했으며, 바깥매남교 건너 매계경로당이 위치했던 논은 자갈로 뒤덮여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가지고 골짝 피해조사를 면서기를 사진기 가지고 와가지고 필지해가지고 그렇게 해가지고 보상이 나오고 그랬습니다. 그때 한 일주일 조사를 했는데 말이 아니었죠. 이 골짜기에서 물이 나와가지고 저기 차 세워놓은게 복개한 곳입니다. 골짜기에서 물이 나와가지고 저게 맥히뿌리가지고 저게 전경들이 그 사람들이 파내고 안되가지고 결과적으로 파내다 파내다 기계로 다 파냈는데. 저게 완전히 자갈이 복개를 해 놨는데 맥했어요.
파내도 파내도 끊임없이 나오는 자갈로 인하여 논은 더 이상 경작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리고 금이 간 바깥매남교는 안전 진단 후 재준공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바깥매남 마을회관 준공에 앞장서고]
태풍으로 인한 피해에 의해 바깥매남교는 새롭게 준공되었고, 자갈로 뒤덮인 논은 매입하여 도로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2011년 그곳에 바깥매남과 안매남 일대 사람들을 위한 정대1리 바깥매남 마을회관을 준공하였다.
회관 요거는 우리가 김은호 군수 찜질방으로 지었거든요. 입찰 줬는데 찜질방 굴뚝을 섰는데 방바닥만 뜨겁지, 벽에 파이프가 넣고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가지고 군에서는 동네가 크니까 경로당을 하나 더 하이소 그래가지고 매계 경로당이 된겁니다. 매남인데 매계경로당이라고 이름을 지은 겁니다. 제가 이장하고 난 다음에 지은 겁니다.
가창 정대1리(바깥매남) 마을회관 준공
달성군(군수 김문오)은 8월 12일 가창면 정대1리(바깥매남)에서 군수, 군의회 의원, 기관단체장 및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회관 준공식을 가졌다. 이번에 준공한 마을회관은 1억9천만원을 투입하여 지상 2층 건물에 연면적 155㎡의 규모로 건립되었고, 친환경 황토방 및 찜질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당 마을은 1972. 8. 25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사회기반시설과 주민 편의시설의 부족 및 기존 법정리 마을회관까지 먼 거리를 오가야 하는 등, 마을 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겪어왔다. 이번 마을회관의 준공으로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고, 힘든 농사일을 한 후 황토 찜질방에서 담소를 나누며 하루의 피로를 풀 수 있게 되어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안락한 쉼터로 활용된다.(달성군청 기획감사실 자료)
바깥매남 마을회관 또는 매계경로당이라 불리는 이곳은 2층 건물에 찜질방과 황토방을 갖추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