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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정 유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655
한자 太古亭 由來
영어공식명칭 Origin taegoj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다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2년 - 「태고정 유래」『달성 군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4년 - 「태고정 유래」『대구의 뿌리 달성』에 수록
관련 지명 태고정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산13-10
성격 전설|지명 유래|정자 유래 전설|인물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박팽년|문중의 어른들
모티프 유형 태고정에서 사육신 제사를 모신 이유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서 태고정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태고정 유래」의 전반부는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제사 때 나머지 사육신들이 따라 들어오는 꿈을 꾸고서 이들 각각의 제사를 따로 준비하여 받들었다는 정자 유래 전설이고, 후반부는 임진왜란 때 힘이 장사라 왜적 3천 명을 혼자 대적해서 싸웠다는 박 장군에 대한 인물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2년 달성군에서 편찬한 『달성 군지』 하빈면 전설 항목에 「태고정 유래」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2014년 달성 문화 재단과 달성 군지 간행 위원회에서 간행한 『대구의 뿌리 달성』의 하빈면 전설 항목에 박 장군에 얽힌 이야기가 덧붙여져 동일한 제목으로 수록되었다.

[내용]

묘골에 있는 태고정은 본래 그 지역에서 5백여 년 살고 있는 박씨 문중의 것이 아니라 그 외가인 성주 이씨 집안의 것이다. 사육신이 화를 입을 당시 박팽년 집안이 화를 피해 온 곳이 묘리였다.

태고정은 임진왜란 때 전부 불에 타 버렸으므로, 현재 태고정이 있는 집 뒤에 세 칸 사당을 지어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문중의 어른들은 제삿날이 되면 의관 정제를 하고 임시(壬時)에 나가게 된다. 어느 제삿날 박팽년 어른 뒤에 다섯 선생이 따라오셨다. 그것을 보고 문중의 어른들은 "이 안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그러십니까? 들어오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박팽년 어른을 따라온 다섯 선생이 "아니 어떻게 들어갈 수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깜짝 놀라 깨니 꿈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여섯 분의 제사를 따로 준비하여 함께 받들었다. 낙빈 서원이 창립되고 나서는 낙빈 서원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임진왜란 때 박 장군에 얽힌 이야기도 전한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박 장군이라는 이가 이곳에서 지키고 있었다. 박 장군은 힘이 장사라 왜적 3천 명을 혼자 대적해서 싸웠다고 하는데, 싸우던 중 기력이 부족해서 사당 안으로 피신을 했다. 바깥의 왜병이 창을 찌르면 박 장군은 그것을 빼앗았는데, 그때 빼앗은 창이 사당 안을 가득 채웠다. 그러니 왜적들이 겁이 나 기름을 뿌려 불을 질렀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면서 비가 내려 사당은 불에 타지 않았다. 그러자 왜적들이 도끼로 사당 기둥을 찍었는데, 기둥은 안 찍히고 자기 발등만 찍어 죽어 버렸다. 그래서 다른 곳은 다 불에 탔으나 사당채만은 남아 있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모티프 분석]

「태고정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태고정에서 사육신 제사를 모신 이유'이다. 태고정은 본래 박씨 문중에서 박팽년을 제사 지내던 곳인데, 나중에는 사육신 제사를 따로 준비하여 받들었으며, 낙빈 서원이 창건되면서 이곳에서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태고정 유래」의 전승 집단은 충절을 지킨 박팽년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태고정이라는 사당과 관련하여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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