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4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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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慕夏堂集 |
이칭/별칭 | 『모하당 문집』,『모하당 실기』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유진 |
[정의]
임진왜란 때 귀화하여 달성에 정착한 일본인 김충선의 문집.
[저자]
김충선(金忠善)[1571~1642]의 본관은 김해(金海), 일본 이름은 사야가[沙也可], 자는 선지(善之), 호는 모하당(慕夏堂)이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선봉장으로 침입했다가 조선으로 귀화하였다. 선조(宣祖)가 "바다를 건너온 모래(沙)를 걸러 금(金)을 얻었다"며 김해 김씨로 사성(賜姓)하였으며, 임진왜란·이괄의 난·병자호란 때 공을 세워 '삼난공신(三亂功臣)'으로 일컬어진다.
[편찬/간행 경위]
집안에 소장되어 오던 김충선의 유문(遺文)이 실화(失火)로 대부분 소실되었는데, 1788년(정조 12)에 후손 김한조(金漢祚)가 김사눌(金思訥)이 소장하고 있던 김충선의 유록(遺錄)을 얻게 되었다. 이후, 1797년(정조 21)에 김한조가 연보 등을 권수에 싣고, 김충선의 유고를 상권으로 하고 새로 모은 김충선의 전(傳) 등 부록을 하권으로 편차한 후 1798년에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1841년(헌종 7)에 후손 김한보(金漢補)·김한정(金漢正) 등이 초간본을 교정한 후 1842년에 개정·증보하여 중간하였다. 중간본에는 강세륜(姜世綸)·정신(鄭藎)·강필효(姜必孝)의 서문과 박광석(朴光錫)의 발문이 추가되어 있다. 『모하당 문집』, 『모하당 실기』라고도 불린다.
[형태/서지]
『모하당집(慕夏堂集)』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다. 판식은 사주 쌍변(四周雙邊)으로 상하 이엽 화문 어미(上下二葉花文魚尾)이다. 크기는 세로 31.0㎝, 가로 21.2㎝, 반곽은 세로 22.0㎝, 가로 17.5㎝이다. 1면 10행에 1행의 자수는 20자이다. 권수제와 판심제는 모두 '모하당 문집(慕夏堂文集)'이다.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권1은 소(疎), 장(狀), 서(書), 기(記), 잡저(雜著), 권2는 연보(年譜), 권3은 부록(附錄)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하당집』에는 이덕형(李德馨)·정철(鄭澈)·권율(權慄)·김성일(金誠一)·곽재우(郭再祐)·이순신(李舜臣) 등과 주고받은 편지가 실려 있다. 이러한 편지의 내용은 주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쟁 상황에 관한 것으로, 절도사에게 화포와 조총을 만들어 각 처에 보급할 것을 청하는 것과 이순신이 물은 조총과 화포 및 화약 제조법에 대한 답서 등이다. 이 밖에도, 선조로부터 성명을 하사받고 은혜에 감사하여 올린 상소와 귀화 과정, 조총과 화포의 보급 과정, 전쟁에 참가한 경력 등을 기록한 「녹촌지(鹿村志)」, 향리에 살면서 만든 15조의 향약 등 많은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