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1269 |
---|---|
한자 | 朴得春 |
영어공식명칭 | Bak Deukchu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홍수 |
[정의]
조선 전기 달성 출신의 효자.
[활동 사항]
박득춘(朴得春)은 1530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대구도호부 관할 하의 해안현(解顔縣) 사람으로 어버이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박득춘은 부친상을 당하여 장례를 치른 뒤에 묘소 곁에 여막을 짓고 삼 년 동안 시묘(侍墓)를 살았다. 그 거처하는 모습과 곡읍(哭泣)하는 형상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유교적인 예법과 의식에 어긋남이 없다고 하였다. 어머니의 상(喪)을 당해서도 부친상 때와 똑같이 삼 년 동안 여막에 시묘해 사니, 몸을 돌볼 틈이 없어서 살가죽과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박득춘의 몸이 쇠약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였고, 불초(不肖)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다.
[상훈과 추모]
후에 박득춘의 효행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정에 알려지자 나라에서 박득춘을 중추원 녹사(中樞院錄事)에 제수하고 정려(旌閭)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