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7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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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都愼徵 |
영어공식명칭 | Do Shin Jing |
이칭/별칭 | 휴숙(休叔),죽헌(竹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달성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휴숙(休叔), 호는 죽헌(竹軒). 증조할아버지는 경상좌우후 도흠조(都欽祖)이며, 할아버지는 증한성 우윤 도원결(都元結)이다. 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서재(鋤齋)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증판결사 이우겸(李友謙)의 딸 여흥 이씨(驪興李氏)이다. 부인은 정기(鄭錡)의 딸 숙인 동래 정씨(東萊鄭氏)이다. 형은 지암(止巖) 도신수(都愼修)[1598~1650]이다.
[활동 사항]
도신징(都愼徵)[1611~1678]은 하빈현[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서 태어났다. 1674년(현종 15) 인선 왕후(仁宣王后)의 상에 자의 대비(慈懿大妃)가 입어야 할 상복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나 대공복(大功服)을 입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지자, 유생의 신분으로 소(疏)를 올려 기년설(朞年說)을 주장함으로써 김수흥(金壽興) 등 서인 일파를 축출하게 하였다. 뒤에 남인의 천거로 1675년(숙종 1) 강릉 참봉이 되고, 이어서 9월 종부시 주부를 거쳐서, 12월 용궁 현감(龍宮縣監)으로 나아가 치적을 올림으로써 통훈대부(通訓大夫)의 품계에 올랐다. 도신징은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상제 의례(喪祭儀禮)에 밝았다. 성품이 효우(孝友)하였으며, 기품이 곧았다. 도신징의 호인 죽헌은 바로 날씨가 추워진 뒤에도 그 절개를 바꾸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취한 것이다. 1678년(숙종 4) 12월 12일 세상을 떠나 1679년 2월 칠곡 오곡(梧谷) 건좌(乾坐)에 장례 지냈다.
[묘소]
묘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영오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