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6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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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鹿洞書院 所藏 古典籍 |
영어공식명칭 | The oriental old books in Nokdongseowon |
이칭/별칭 | 녹동서원 고전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길 218[우록리 585-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은영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녹동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고도서, 책판 및 현판류 일체.
[개설]
녹동서원(鹿洞書院)은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1571~1641]을 제향하는 서원이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당시 귀화한 일본인으로 본명은 사야가(沙也可)이다. 임진왜란·정유재란과 이괄(李适)의 난, 병자호란 당시 큰 공을 세웠다. 1643년 대구의 녹리(鹿里)로 돌아와 살면서 가훈과 향약 등을 마련하며, 향촌 교화에 힘썼다. 1842년(헌종 8) 간행된 『모하당 문집(慕夏堂文集)』이 전해진다. 1794년(정조 18)에 건립된 녹동서원은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5년(고종 22)에 영남의 유림과 김씨 문중이 합심하여 재건하였다. 현재 녹동서원은 서원 옆에 유물관인 충절관[한일 우호관]을 만들어 그곳에 김충선의 유품을 비롯한 각종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유물관 내부에는 주로 고서와 임진왜란 당시 사용되었던 무기류가 있는데, 고서의 경우 『모하당 문집』·『맹자 집주 대전(孟子集註大全)』과 필사본(筆寫本) 등 11종 12책이 보관되어 있다. 무기류로는 임진왜란 당시 사용되었던 조총, 칼, 화살 등 19점이 있으며, 1892년 김충선에게 내려진 교지 1점이 전시 보관되어 있다. 현판의 경우 '모하재기(慕夏齋記)'·'녹동재(鹿洞齋)'등 6점이 있으며, 책판은 『모하당 문집』과 『모하당 실기』 79장이 보관되어 있다.
[형태/서지]
김충선 추증 교지의 크기는 가로 81㎝, 세로 61㎝이다. 『모하당 문집』판목은 김한정(金漢正)이 편찬한 3권 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54.6㎝, 세로 24㎝, 두께 2.4㎝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에 계선이 있으며, 1면 10행 20자로 주는 쌍행이다. 어미는 상내향 이엽 화문 어미로서 비선은 상하 백구이다. 서문은 1842년 강필효(姜必孝), 강세륜(姜世綸), 정신(鄭藎)이 썼으며, 발문은 1798년 김한조(金漢祚), 1842년 박광석(朴光錫) 등이 썼다. 『모하당 실기』판목은 김석희(金錫禧), 김창순(金昌淳)이 편찬한 3권 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크기는 가로 48.4㎝, 세로 19.6㎝, 두께 2㎝이다. 판식은 사주 쌍변에 계선이 있으며, 1면 10행 20자이다. 어미는 내향 이엽 화문 어미로서 비선은 상하 백구이다. 서문은 1851년 정석채, 1893년 김병도가 썼으며, 발문은 1893년에 손용하, 박승동이 썼다.
[구성/내용]
고도서는 필사본으로 『고소대(姑蘇臺)』, 「연주시(聯珠詩)」,「종모정(宗某定)」 등이 있으며, 목판본으로 『상례비요(喪禮備要)』,『송애집(松厓集)』, 『논어언해(論語諺解)』, 『논어 집주 대전(論語集註大全)』,『맹자 집주 대전(孟子集註大全)』,『모하당 문집』이 있다. 고문서는 김충선을 병조 판서로 증직하는 1892년(고종 29) 12월의 추증 교지가 남아 있다. 교지의 전문을 보면, "정헌대부 행용양위 대호군 김충선 증 정헌대부 병조 판서 겸 지의금부훈련원사자(正憲大夫行龍驤衛大護軍金忠善贈正憲大夫兵曹判書兼知義禁府訓練院事者)"라고 적혀 있다. 책판은 『모하당 문집』과 『모하당 실기』책판이 서원 내에 보관 중이다. 『모하당 문집』은 1842년 판각된 것으로 현재 48장이 남아 있으며, 1893년 판각한 『모하당 실기』는 31장이 남아 있다. 『모하당 실기』는 문집 간행 이후 상언장(上言狀), 시(詩), 문(文) 등을 모아 3권 1책의 속집으로 간행한 것이다. 권1과 권2에 각각 손용하, 박광석의 발문이 첨부되어 있으며, 권3은 언해본(諺解本)으로서 「모하당 슐회」가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녹동서원의 교육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