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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리리 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633
한자 本里里 遺蹟
영어공식명칭 The Ancient Site at Bonli-ri, Dalseong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333-87
시대 선사/청동기,고대/초기 국가 시대,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이창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1년 11월 22일~2012년 2월 19일 - 본리리 유적 삼한 문화재 연구원이 발굴 조사
현 소재지 본리리 유적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333-87지도보기
출토 유물 소장처 삼한 문화재 연구원 -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서로 67[이곡동 1196-9]
성격 유적
면적 4,542㎡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유적.

[위치 및 현황]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과 달성군 유가읍 테크노폴리스로 통하는 도로 구간 중 본리 터널과 명곡 터널은 고가 도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본리리 유적(本里里遺蹟)은 고가 도로의 하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슬산 천수봉 일대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천내천 상류로, 발원지에서 북쪽으로 3.82㎞ 떨어진 지점의 동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대구 수목원에서 달성군 화원읍 방면으로 1.3㎞ 떨어진 지점의 남쪽 곡간 충적지 일대이다. 유적의 서쪽에는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로 연결되는 도로가 바로 접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본리리 유적은 대구 테크노폴리스~달서구 대곡동 도로 건설 사업으로 인해 삼한 문화재 연구원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달서구 대곡동 일대까지의 대구 테크노폴리스 진입 도로 건설로 인해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조사 결과 본리 택지~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간 도로 건설 공사 현장의 단면에서 민무늬 토기와 청동기 시대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이에 본리리 인흥사(仁興寺) 터와 관련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아 달성군 유가읍 본리리 구간[1만 8164㎡]에 대해 시굴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시굴 조사는 2011년 9월 2일부터 같은 해 9월 9일까지 실시되었는데, 조사 결과 구상 유구, 수혈과 민무늬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확인된 면적[4,542㎡]에 대해서는 그해 11월 22일부터 2012년 2월 19일까지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 시대 집자리 1동과 초기 철기 시대~삼국 시대 구상 유구 8기, 수혈 11기, 주혈군 1기[17개] 등 총 21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은 민무늬 토기와 점토 띠 토기[점토대토기], 삼국 시대 토기편, 그물추 등 토도류 29점과 지석·박편 석기 등 석기류 54점이다.

유적은 해발 49.8~46.6m에 위치하는 곡간 충적지로 Ⅰ구역[645㎡]과 Ⅱ구역[3,907㎡]으로 나누어 조사되었다. Ⅰ구역에서는 구상 유구 1기와 수혈 2기가 확인되었다. 구상 유구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두 줄기가 흘렀으며, 구상 유구 주변으로 수혈 2기가 분포하고 있다. 구상 유구 내부에서 삼각형 점토 띠 토기가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하류인 북쪽에서 수습되었다. Ⅱ구역에서는 청동기 시대 집자리 1동과 초기 철기 시대~삼국 시대의 구상 유구 7기와 수혈 9기, 주혈군 1기[17개]가 조사되었다. 구상 유구는 크게 조사 지역 서쪽 경계부 주변에 1기, 동쪽 경계부 주변에 1기, 중앙에 5기가 분포한다. 구상 유구 주변으로 수혈, 주혈이 분포하고 주거지는 조사 지역 중앙부에 위치한다.

청동기 시대 집자리는 청동기 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형태인 송국리형(松菊里型) 집자리로 길이 560㎝, 너비 444㎝이다. 내부 시설로는 중앙의 타원형 수혈과 내부·외부에 주혈과 구가 있다. 유물은 바닥에서 지석과 박편이, 내부토에서 붉은 간 토기 항아리[적색 마연 토기 호]와 민무늬 토기, 파수부발(把手附鉢), 지석, 몸돌, 제형 석도, 부리형 석기, 미완성 석기 등 총 44점이 출토되었다. 편년은 기원전 8~6세기로 판단된다. 구상 유구는 Ⅰ구역에서 1기, Ⅱ구역에서 7기로 상부는 대부분 후대 경작에 의해 삭평된 상태이다. 구상 유구는 남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유로가 형성되어 있으며, 내부에서 별다른 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평면 형태에 정형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자연 구로 판단된다. 유물은 삼각형 점토 띠 토기 구연부와 붉은 간 토기, 민무늬 토기, 굽다리 접시, 사발[완], 그물추, 돌도끼, 지석, 박편 등 39점이 출토되었다. 1~7호 내부에서 삼각형 점토 띠 토기가 다수 출토되었는데, 편년은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로 판단된다. 바닥 면에서 굽다리 접시와 사발이 출토된 8호는 가장 후대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본리리 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생활 유적과 유물은 당시 달성군 지역의 선사·고대 문화상을 밝히는 소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주변 지역에 대한 발굴 조사를 통해 고고학적 자료가 더 축적된다면 주변 유적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달성군의 당시 생활 문화상을 밝힐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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