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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간친회[달성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406
한자 講遊園 懇親會[達城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단체

[정의]

1913년 3월 대구 달성 지역에서 조직된 청년 지식인 문화 운동 단체.

[개설]

강유원간친회(講遊園懇親會)는 1913년 3월 달성 친목회 회원들이 중심이 되어 국내외 청년 지식층을 규합하여 조직되었으며, 문화·학술 활동을 중점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달성 친목회가 추구한 독립운동의 외연을 확대해 나갔다.

[설립 목적]

강유원간친회는 학술 강의, 체육 활동을 매개로 신지식 청년층의 활동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경상남북도 지역의 청년 지식층과 신흥 상업 자본가층과의 연계를 확산시켜 나가고자 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강유원간친회의 회원 규모는 약 4~50여 명 정도였던 것으로 보이며, 달성 친목회 회관에서 매주 1회씩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학식과 명망이 있는 명망가를 초빙해 지식 계발을 도모하고, 고전을 통해 유학적 지식을 축적하는 활동을 벌였다. 또 달성 친목회가 해산된 뒤인 1916년 경상남도 진주의 청년들이 개최한 운동회에 참여하여, 경상남도 지역과 유대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강유원간친회는 경상남북도 신지식인뿐 아니라 상업 자본가가 연계되는 매개 역할을 하였다. 달성 친목회 회원으로써 태궁 상회를 운영하던 서상일은 경상남도 통영의 신흥 자본가인 서상호(徐相灝)와 서상환(徐相懽) 등을 비롯한 경상남도 마산의 상업계에 폭 넓은 인맥을 가진 김기성(金璣成)과도 관계를 맺었다.

강유원간친회은 학술 강의 활동·체육 활동을 매개로 지식·청년층의 활동 공간을 확보하는 동시에 경상남북도 지역의 청년·지식인층의 연계망을 확산시켜 나가는 매개체였다. 또 강유원 간친회는 달성 친목회가 강제 해산 당한 뒤 재건 달성 친목회의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제의 감시망에 포착된 강유원간친회 역시 달성 친목회가 강제 해산 당한 뒤인 1916년 4월에 일제 당국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강유원간친회는 1910년대 달성 친목회의 자매단체의 성격을 가지고 경상남북도 지역의 신지식 청년층과 신흥 자본가층의 유대를 통해 독립운동의 외연을 확대시켜 나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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