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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풍곽씨 곽주의 한글 편지를 통해 본 조선 선비의 삶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050
한자 玄風郭氏 郭澍- 便紙- 通- 朝鮮 -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대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배혜진

[정의]

『현풍곽씨 언간』의 주된 발신자인 곽주의 편지를 통해 본 세심하고 다정다감했던 아버지이자 선비로서의 모습.

[개설]

『현풍곽씨 언간(玄風郭氏諺簡)』은 17세기 초에 현풍 소례 마을[현 달성군 현풍읍 대 1리]에서 가솔(家率)들을 거느리고 살았던 곽주(郭澍)[1569~1617]와 그 가족들이 쓴 서간문(書簡文)이다. 이는 1989년 4월 4일에 달성군 현풍면[현 현풍읍] 대리에 거주하는 현풍곽씨 후손들이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뒷산의 석문산성(石門山城) 안에 있는 12대 할머니 진주 하씨 묘를 이장하려고 작업하던 중 하씨의 관 속에서 다량의 수의(壽衣) 의복과 함께 발견된 편지 자료들이다. 『현풍곽씨 언간』에 실려 있는 서간문 자료는 매수를 기준으로 하여 도합 172매이다. 그중에서 한글 편지는 167매이고, 한문 편지는 5매이다. 이 자료 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곽주가 그의 부인에게 쓴 편지이며,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출가녀가 어머니 진주 하씨에게 보낸 편지다. 이 외에도 곽주가 장모에게 보낸 편지, 곽주가 노비에게 보낸 편지 등이 있다. 이러한 편지를 통하여 조선 후기에 아버지이자 선비로서의 삶을 살았던 곽주의 참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곽주를 통해 본 선비의 삶]

곽주곽경(郭鏡)의 19세손이자 슬하에 4남 5녀의 자녀를 둔 현풍 지역의 세족이다. 홍의 장군(紅衣將軍)으로 유명한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의 종질이기도 하다. 첫째 부인[광주 이씨]과 사별한 후 진주 하씨와 결혼하였으나 전처 아들인 곽이창과의 갈등으로 하씨가 분가를 하게 되었다. 곽주는 소례, 하씨는 논공에서 각각 떨어져 살았으므로 서로 왕래하는 생활을 하면서 편지를 통해 많은 사연들을 주고받았다. 흔히 조선 시대의 남성들은 가정사에 무심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곽주가 하씨에게 보낸 편지들을 보면 옷감 생산과 염색, 옷의 제작 여부, 자녀들의 외출복 등 집 안팎의 크고 작은 일들을 세세하게 적어 놓았다. 목화 농장과 관련하여 분배해야 할 면화의 분량을 구체적인 문서로 남기는 치밀함에서 합리적인 경영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가족에 대한 안부는 아버지로서의 정감을 느끼게 한다.

한편, 조선의 선비로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지키려는 모습도 담겨 있다. 편지의 내용에는 곽주가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사연이 있지만 벼슬에 오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당시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문묘 종사(文廟從祀) 운동과 관련하여 과거를 치지 못하더라도 상소는 꼭 올리고 오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 준다.

[현풍곽씨 언간의 가치]

진주 하씨 묘에서 출토된 『현풍곽씨 언간』은 1602년부터 1646년에 걸쳐 있으며, 분량이 많을 뿐더러 내용도 다채로워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현풍곽씨 언간』에는 17세기 초기를 살았던 곽주와 그 가족들, 그리고 주변의 친지들과 노복 등 여러 사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 또한 생동감 있게 드러나 있다. 이 편지들은 조선 시대 연구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400년 전 우리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나아가 조선 시대 선비로서의 삶, 아버지로서의 삶, 어머니로서의 삶은 어떠했는지 대략적으로나마 느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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