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0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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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達城郡- 名山, 琵瑟山- 四季 |
영어공식명칭 | Famous(celebrated) mountain of Dalseong-gun, The four seasons of Mt. Biseul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상일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화원읍·논공읍·현풍읍·옥포읍·유가읍·구지면·가창면]을 중심으로 하여 달서구·남구·수성구와 경상북도 청도군[각북면·이서면·풍각면], 그리고 경상남도 창녕군[성산면]에 걸쳐 있는 산지.
[개설]
달성군 남쪽 대부분 지역에 걸쳐 있는 비슬산의 면적은 1,300만㎡로, 1986년 2월 22일 군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토산(土山)이면서 산줄기가 각 방향으로 뻗어 있어 산세(山勢)는 웅장하고 기상이 높아 보인다. 비슬산의 형태는 1,000m 이상의 산정은 평탄하며, 남서쪽과 북쪽 사면은 급경사의 절벽, 북동쪽 사면은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비슬산의 주요 산줄기는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1,084m]을 중심으로 남쪽으로는 대견봉(大見峰)[1,035m], 월광봉(月光峰)[1,003m], 석검봉(石劍峰)[톱바위 또는 칼바위, 990m], 조화봉(照華峰)[1,058m], 관기봉(觀機峰)[992.0m] 등이 있고, 북쪽으로는 함박산[432.0m], 삼필봉(三筆峰)[468.0m] 등이 있다.
비슬산에서 북동 방향으로 삼봉재(三峰峴)[847.0m], 헐티재[510m], 원계재[윙계재, 514m], 통점령(通店嶺)[700m], 최정산(最頂山)[915m], 주암산(舟巖山)[846.8m] 등이 최정산괴를 이루며 달성군 가창면으로 뻗어 있고, 북북동 방향으로 달서구, 남구, 수성구와 가창면의 경계를 이루며 청룡산(靑龍山)[793.1m], 산성산(山城山)[653.3m] 등을 거쳐 대구 앞산[658.7m]으로 연결된다. 또한 북서쪽 달성군 옥포읍과 논공읍 방향으로는 대방산(大方山)[378m], 금계산(金鷄山)[489.3m] 등이 이어진다. 최근까지 비슬산의 최고봉은 대견봉으로 표기되었으나, 2014년 10월 국가 지명 위원회에서 1481년(성종 12)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1757년(영조 33)에 발행한 「현풍현 지도」를 근거로 비슬산 최고봉을 대견봉에서 천왕봉으로 변경하였고, 대견사지 서쪽에 위치한 1,035m 봉우리가 대견봉이 되었다.
[명칭 유래]
달성군 비슬산 또는 유가 비슬산으로 불리는 비슬산의 명칭에 대한 유래는 여러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유가 비슬산이라고 불리는 것은 주봉을 비롯한 산체의 대부분이 달성군 유가읍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파 비(琵), 거문고 슬(瑟)’ 자를 이름으로 삼은 비슬산(琵瑟山)은 신라 시대에 인도의 한 승려가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이 산을 구경하던 중 비파 모양을 닮았다는 의미로 범어(梵語)[예전 인도어]의 발음을 그대로 음으로 표기한 것이라는 설과,『유가사 창설 내력』이란 책과 신라 흥덕왕 원년인 병오년 5월 상한에 도성 국사(道成國師)의 문인(門人)인 도의(道義)가 쓴 『유가사 사적(瑜伽寺寺蹟)』이란 책에서 산의 모습이 거문고와 같아 비슬산이라고 하였다는 기록과, 비슬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비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비슬산의 한자가 ‘포(苞)’를 의미하기 때문에 ‘포산(苞山)’이라고 했고, 이 때문에 현풍(玄風)은 예전 포산(苞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포산이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으로 『동국여지승람』 제27권 「현풍현 산천편」에 의하면 ‘비슬산은 일명 포산이니 현의 동쪽 5리에 있으며 또한 성주, 밀양, 창녕에서도 보인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비슬산은 닭벌[달구벌, 달구는 닭의 경상도 사투리] 주변에 우뚝 솟은 볏[비슬, 비슬은 볏의 경상도 사투리]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달성군에서 1981년 편찬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에 보면 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부를 때 일컫는 말이며 중국말로는 포산이란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비슬산은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 온통 물바다가 됐는데 비슬산만 높아서 남은 곳이 있었는데 그때 남은 바위에 배를 매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 바위의 형상이 비둘기처럼 생겨 ‘비들산’으로 불리다가 ‘비슬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재미있는 비슬산에 대한 전설에는 '사왕설'(四王說)이 있는데, 이것은 비슬산의 명칭인 '비슬'(琵瑟)이라는 한자에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뜻의 '비'(比)와 '필'(必) 자가 각각 '임금 왕(王)' 자 4개를 떠받들고 있는 모습으로 4명의 왕이 배출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슬산의 사계]
비슬산은 산림이 수려하고 울창하여 계절마다 색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데, 봄에는 진달래[참꽃]와 철쭉[개꽃],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 가을에는 단풍과 억새 군락, 겨울에는 얼음동산과 썰매장, 그리고 아름다운 설경으로 유명하다. 봄이면 양지꽃, 금낭화, 은방울꽃, 여름이면 나리, 원추리, 동자꽃, 가을이면 두메부추, 쑥부쟁이, 산구절초 등 다양한 야생화들이 피어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비슬산 자연 휴양림이 자리하고 있어 빼어난 자연 경관 속에서 산림욕을 즐기면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봄에는 비슬산 정상부와 대견사지 북쪽 고원 지대의 능선을 따라 약 100만㎡의 참꽃 군락지가 펼쳐져 장관을 이루며, 매년 4월 말과 5월 초에는 진달래의 분홍빛으로 물든 비슬산 정상에서 참꽃을 테마로 한 다채로운 체험 행사가 펼쳐진다. 이때는 평상시보다 더 많은 등산객들이 비슬산 참꽃 축제를 즐기기 위해 비슬산을 찾아온다. 여름의 비슬산은 용연사 계곡, 정대 계곡, 냉천 계곡 등의 시원한 계곡물이 대구의 무더위를 식혀주는데, 비슬산 내에 자리잡고 있는 자연 휴양림을 비롯하여 캠핑장과 청소년 수련관 등 다양한 휴양 시설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 가을은 비슬산 정상부의 억새 군락이 알록달록 오색 단풍과 함께 가을산의 정취를 자아낸다. 겨울의 비슬산은 설경과 더불어 자연 휴양림 일대에 들어선 얼음동산으로 유명하다. 얼음동산은 1998년 처음 선을 보인 이후 15년째 운영하고 있는 체험 관광 시설이다. 매년 겨울이면 주말 평균 2만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달성군의 대표적 겨울철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았다. 얼음동산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얼음 조각, 얼음 빙벽, 얼음 기둥, 이누이트족의 이글루[얼음집] 등 볼거리가 가득할 뿐만 아니라 얼음 썰매장, 얼음 미끄럼틀, 얼음 동굴 체험 등 흥미로운 체험거리가 넘쳐난다.
[비슬산의 관광 명소와 문화 유적]
비슬산 곳곳에는 관광 명소와 문화 유적이 산재해 있다. 비슬산 최고봉에서 남쪽으로 약 2㎞ 떨어진 해발 1,000m 지점의 서쪽 평탄면에는 절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평탄면의 남쪽은 수직에 가까운 급애면이고 급애면 위에 석탑과 건물 터가 조성되어 있다. 절터 남쪽 절벽에는 사찰 부지를 조성하기 위해 쌓은 듯한 축대가 길이 38m, 높이 7m가량 남아 있다. 절터 위에 조성된 석탑은 1995년 5월 12일 대구광역시 유형 문화재 제42호로 지정된 대견사지 삼층 석탑(大見寺址三層石塔)이다. 이 탑은 전체 높이 371㎝, 탑신 높이 236㎝, 기단 높이 135㎝, 기단 너비 182㎝이며, ‘중국 당나라의 황제가 어느 날 세수를 하려고 보니 대야의 물속에서 험한 지형에 웅장한 사찰(寺刹)이 세워져 있는 모습이 나타났다. 이에 중국 곳곳을 뒤졌으나 찾지 못하자 이웃인 신라에 사람을 보내 찾은 것이 바로 비슬산의 대견사지이다. 이후 황제는 신라에 돈을 보내 9세기 헌덕왕[809~826] 때 비슬산에 절과 삼층 석탑을 건립하였고 대국[중국]에서 본 절이라 하여 대견사(大見寺)라는 이름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절은 임진왜란 때 허물어져 버리고 빈터에 주춧돌과 석축(石築)만이 남아 있으며 삼층 석탑도 무너져 있던 것을 달성군에서 1988년도에 복원(復元)하였다. 그리고 2014년 달성군은 허물어져 있던 폐사지였던 대견사지를 복원하여 중창하였다. 중창된 비슬산대견사는 전국에 산재한 5,300여 개소의 페사지 가운데 '중창 제1호'이다. 한편 일부 학자들 사이에는 대견사(大見寺)의 ‘견(見)’ 자를 나타날 ‘현(見)’ 자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 근거로 『주역(周易)』을 비롯한 고전에는 ‘견(見)’이 아닌 ‘현(見)’으로 읽고 있으므로, 절이 지어질 당시에는 ‘대현사(大見寺)’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비슬산 주봉의 북쪽 산록에는 신라 시대인 912년(선덕왕 1) 보양 국사(寶壤國師)가 창건했다고 하는 석가여래(釋迦如來)의 진신 사리를 모신 용연사(龍淵寺)가 있으며, 그 밖에 유가사(瑜伽寺), 소재사(消災寺), 용문사(龍門寺), 용천사(湧泉寺) 등 많은 절이 있다. 특히 용연사는 동화사(桐華寺)와 더불어 대구광역시 근교에서 이름난 사찰로, 경내에는 석조 계단(石造戒壇)[보물 제539호], 석가여래 팔상(釋迦如來八相), 사명당 영정(四溟堂影幀), 극락전(極樂殿), 명부전(冥府殿), 향로전(香爐殿), 보광루(寶光樓)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