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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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悼二將歌 |
영어공식명칭 | Doijangga (Song by Ki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석배 |
[정의]
고려 제16대 왕 예종이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전사한 신숭겸과 김락을 기리기 위해 1120년에 지은 8구체 향가 형식의 노래.
[개설]
「도이장가」의 제작 동기에 대해서는 신숭겸의 행적을 기록한 『평산신씨장절공유사(平山申氏高麗大師壯節公遺事)』와 평산신씨 족보에 소상하게 나오고, 『고려사(高麗史)』(14권), 『명신행적(名臣行蹟)』,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등에도 간략하게 나온다.
[구성]
「도이장가」에 대한 해독과 그에 따른 해석은 다양하다. 양주동과 김완진의 해석을 보이면 다음과 같다.
양주동 해독
주을완호백호(主乙完乎白乎)[니믈 오ᄋᆞᆯ오ᄉᆞᆯ ᄫᅳᆫ]/
심문제천을급곤(心聞際天乙及昆)[ᄆᆞᅀᆞᄆᆞᆫ ᄀᆞᇫ하ᄂᆞᆯ]/
혼시거사의중(魂是去賜矣中)[넉시 가샤ᄃᆡ]/
삼오사교직마우욕(三烏賜敎職麻又欲)[사ᄆᆞ샨 벼슬마 ᄯᅩ ᄒᆞ져]/
망미아리자(望彌阿里刺)[ᄇᆞ라며 아리라]/
급피가이공신량(及彼可二功臣良)[그 ᄢᅴ 두 功臣여]/
구내직은(久乃直隱)[오라나 고ᄃᆞᆫ]/
적오은현호사정(跡烏隱現乎賜丁)[자최ᄂᆞᆫ 나토샨뎌]
양주동 해독
님을 온전하게 하시기 위한/그 정성은 하늘 끝까지 미치심이여
그대의 넋은 이미 가셨지만/일찍이 지니셨던 벼슬은 여전히 하고 싶으심이여
오오! 돌아보건대 두 공신의 곧고 곧은 업적은 오래오래 빛나리로소이다
김완진 해독
주을완호백호심문(主乙完乎白乎心聞)[니믈 오ᄋᆞᆯ오ᄉᆞᆯᄫᅳᆫ ᄆᆞᅀᆞᄆᆞᆫ]/
제천을급곤(際天乙及昆)[ᄀᆞᇫ하ᄂᆞᆯ 밋곤]/
혼시거사의(魂是去賜矣)[넉시 가샤ᄃᆡ]/
중삼오사교(中三烏賜敎)[몸 셰오신 말ᄊᆞᆷ]/
직마우욕망미아리자급피(職麻又欲望彌阿里刺及彼)[셕 맛도려 활 자바리 가ᄉᆡ와뎌]
가이공신량(可二功臣良)[됴타 두 功臣아]/
구내직은(久乃直隱)[오래옷 고ᄃᆞᆫ]/
적오은현호사정(跡烏隱現乎賜丁)[자최ᄂᆞᆫ 나토신뎌]
김완진 해석
님을 온전케 하온 / 마음은 하늘 끝까지 미치니, / 넋이 가셨으되 / 몸 세우시고 하신 말씀 / 직분 맡으려 활 잡는 이 마음 새로워지기를.
좋다, 두 공신이여. / 오래 오래 곧은 / 자최는 나타내신저.
[내용]
고려 태조 왕건은 팔관회를 열어 여러 신하와 기쁨을 함께할 때마다 자신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신숭겸과 김락 두 공신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을 매우 애석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짚으로 신숭겸과 김락의 형상을 만들게 하고 조복을 입혀 자리에 앉히고 술과 음식을 하사했다. 술과 음식을 내리면 허수아비들이 술을 받아 마시고, 생시와 같이 일어나 춤추었다고 한다.
예종(睿宗)은 1120년(예종 15) 가을에 서경(西京)[현재 평양]에 순행하여 팔관회(八關會)를 열었다. 공산전투에서 순절한 김락(金樂)과 신숭겸(申崇謙)을 기리는 가상희(假像戱)가 공연되었다. 허수아비[가상(假像)] 둘이 비녀를 꽂고 자주색 옷을 입었으며, 홀(笏)을 잡고 말을 타고 힘차게 뜰을 뛰어다녔다. 왕이 기이하게 여겨 좌우의 신하들에게 물으니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때, 왕을 대신해서 죽은 대장군 김락과 신숭겸이라고 했다.
예종은 크게 감동하고, 송도에 돌아와 한시 「도이장시(悼二將詩)」를 지어 공신을 기렸다.
「도이장시」
견이공신상(見二公臣像)[두 공신의 모습을 보니]/환란유소사(汍灡有所思)[생각에 잠겨 눈물 흐르네.] /
공산종적막(公山蹤寂寞)[공산의 옛 자취는 쓸쓸한데]/평양사유유(平壤事留遺)[평양에는 그 일이 남아 있다네.] /
충의명천고(忠義明千古)[충의는 천고에 밝게 빛나고]/사생유일시(死生惟一時)[생사는 오직 한 때의 일이라네.] /
위군제백인(爲君躋白刃)[임금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종차보왕기(從此保王基)[이로부터 나라의 기틀 보전되었네.]
예종은 한시로 만족하지 못하고 8구체 향가 형식으로 「도이장가」도 지어 두 공신의 큰 공을 잊지 않고자 했다.
[의의와 평가]
「도이장가」에 표출된 미의식은 숭고미(崇高美)이다. 자신이 섬기고 따르는 임금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충성심은 값진 것이므로 그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숭고하다. 「도이장가」는 현재 전하고 있는 것 중에서 향찰로 표기된 마지막 작품으로 「정과정」과 함께 향가 형식의 노래가 고려 중엽까지 존재했던 사실을 보여주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