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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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化柳氏 |
영어공식명칭 | Moonhwa Ryu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황동권 |
본관 | 문화유씨 -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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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문화유씨 입향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
세거|집성지 | 문화유씨 세거지 -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 |
성씨 시조 | 유차달 |
[정의]
유차달을 시조로 하는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에 살고 있는 문화유씨 세거 성씨.
[연원]
문화유씨 시조는 유차달(柳車達)이다. 유차달은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할 때 수레 1천 량으로 군량을 조달한 공으로 대승(大丞)에 올라 삼한 공신에 봉해졌다. 이 당시 유차달은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옛 이름, 지금 황해도 은율군]의 호족이었다. 유차달의 5대조인 유색(柳穡)이 신라 헌덕왕 때 유주 구월산(九月山)에 은거한 이래로 자손들이 대를 이어 살다가 고려 개국 이후 개성에서 세거해 왔다. 6세손은 문간공(文簡公) 유공권(柳公權)은 중시조라고 할 수 있는데, 고려 명종조에 등제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차달의 7세손 문간공(文簡公) 유공권(柳公權)이 고려 명종(明宗) 때 정당문학과 참지정사 등을 지내고 문장과 글씨로 명성을 떨쳤다.
그 후 9세손 유경(柳璥)은 고종 때 최의(崔誼)의 무신정권을 무너뜨려 왕정을 복구하는 데 일조해 위사공신(衛社功臣) 1등에 봉해졌으며, 고향인 유주를 식읍으로 받았다. 이에 후손들이 유주 즉 문화를 관향으로 삼았다.
현재 문화유씨는 14개 파가 있다.
[입향 경위]
문화유씨는 1700년대 말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新西洞)에 정착하여 세거하면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현황]
문화유씨가 거주하는 신서동은 산업화와 급속한 도시화로 집성촌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관련 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