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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20329
한자 現代[東區]
영어공식명칭 Modern Time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동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정의]

1945년 8월 15일 광복부터 2018년 현재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1945년 8월 15일 광복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 개항 이후 근대의 역사적 과제였던 완전한 독립, 곧 자주적 국민국가의 수립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었다. 새로운 국가 건설 과정과 육이오전쟁 시기에 동구는 격정의 한가운데 서 있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대구광역시 동구는 대구광역시 전체 면적의 20.6%에 해당하는 182.18㎢의 넓은 면적을 가진 도농복합도시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이어 전국 자치구 중 두 번째로 넓은 면적 보유하고 있다. 동구의 지리적 위치를 보면, 동단은 대림동 금호강변[섬챙이]이며 경산시와 경계하고 있고, 서단은 덕곡동 도덕산이며 대구광역시 북구와 경상북도 칠곡군과 경계하고 있다. 남단은 금강동 금호강변[윗말]이며, 경상북도 경산시와 경계하고 있다. 북단은 도학동 팔공산 정상이며 경상북도 영천시와 대구광역시 군위군과 경계하고 있다. 인구는 2016년 현재 147,154세대에 351,352명의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동구 연혁]

동구는 정부 수립 일 년 뒤인 1949년 8월 15일 광복절 때 대구시 동부출장소가, 1958년 1월 1일 신년을 맞아 동촌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63년 1월 1일 구제(區制)가 실시되면서 대구시 동구가 되어 비로소 대구광역시의 구로 편제되었다. 1975년 10월 1일 행정관할 구역 조정으로 신암동 일부가 대구광역시 북구로 편입되었다. 1976년 8월 1일 동촌출장소가 대구시 직할출장소로 승격했으며, 1980년 4월 1일 동구와 수성구로 분구 되어짐과 동시에 동촌출장소는 폐지되었다. 1981년 7월 1일 대구직할시로 승격할 때 경상북도 경산시 안심과 공산이 동구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 관할구역 조정으로 동구 소속 신암4동 일부와 연경동 일부가 대구직할시 북구로 편입되었다. 1988년 동구가 자치구로 승격하였고, 1991년 동구의회가 개원하였다. 1995년 1월 1일 대구광역시 동구로 명칭이 변경되고, 1995년 7월 1일 초대 민선자치단체장이 취임하였다.

[영남권 광역교통의 중심도시이자 혁신도시]

1937년 동촌비행장으로 출발한 대구공항은 1996년 국제선 정기노선이 취항하면서 대구국제공항의 면모를 갖추었다. 2017년 12월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과 동부·남부시외터미널이 동대구역복합환승센터내 동대구터미널로 이전하였다. 1969년 6월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여 대구의 대표역인 동대구역이 자리하고 있다. 동대구역은 경부선의 기차역으로서 대구역과 고모역 사이에 있으며, 구 대구선이 분기한다. 동구는 영남권 광역교통의 핵심 지역이다.

대구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이시아폴리스 등 대형 국·시책 프로젝트 사업으로 대구경북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신성장 동력도시로 부상하고 있다. 대구혁신도시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동내동 일원에 조성 중인 혁신도시이며, 신서혁신도시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14개 정도 정부기관이 대구혁신도시 내 자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는 2009년 3월 「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이 이루어진 뒤 대구광역시 동구 신서동첨단의료복합단지 지정 고시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시아폴리스동구 봉무동 일원에 위치하며, 자족가능한 미래형 복합 신도시 개발을 목표로 산업단지, 복합 상업단지, 주거단지 등을 구성하고 있다.

영산인 팔공산(八公山)과 오랫동안 대구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금호강변의 동촌유원지가 자리하고 있어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다. 또한 동화사·파계사·부인사·갓바위 등 한국 불교의 성지라 할 만큼 중요한 문화적 자산을 품고 있다. 불로고분군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역사문화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팔공산]

영산인 팔공산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 있어 좌우 정치세력이 충돌한 현장이었다. 10월항쟁 이후 팔공산을 찾은 사람들은 야산대라는 초기 유격부대[빨치산, 공비]를 형성하였고, 1948년 대구 6연대 사건 이후 좌익계 군인들이 팔공산에 입산해 조선인민유격대에 합류하였다. 6·25전쟁 이후 제3대, 제4지구당 등의 이름으로 유격 부대가 활동한 무대였다. 특히, 제4지구당남도부 부대가 휴전회담 이후에도 아지트를 형성하면서, 도심에 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활동을 벌였던 근거지가 팔공산이었다. 또한 남로당 경북도당, 조선노동당 경북도당이 자리하여 당 사업을 수행한 공간이었다. 이처럼 10월항쟁 이후 시작된 팔공산에서 좌익 유격 부대 활동은 1954년 1월까지 상당히 긴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한편, 팔공산6·25전쟁 당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 전적지와도 지근 거리에 있었기에 낙동강방어선[부산교두보]에서 중요한 전략지였다.

[동촌유원지]

동촌유원지는 일제강점기 중인 1920년대 후반부터 대구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안식처로 각광을 받았던 공원이었다. 대구에서 부영버스와 철도로 이용이 가능하고, 화원유원지에 비해 거리가 가까워 피서철이나 향락철이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동촌유원지를 찾았다. 그에 따라 1930년대 대대구의 건설이 추진될 때, 동촌유원지의 제방 공사가 이루어져 금호강 홍수로부터 안전한 유원지로 탈바꿈 해나갔다.

대구시 동구가 행정구역으로 생겨나던 1963년 2월에 대구시는 동촌유원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세부 예산과 세부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내용은 동촌유원지내에 수영장, 스케이트장 등을 비롯해서 실내경기장을 신설하고, 아동을 위한 어린이놀이터도 조성하고, 경북대학교를 미화하기 위한 조림계획도 포함하고 있었다. 1965년 동촌유원지는 유원지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1982년부터 동촌유원지 개발을 추진하였다. 1990년에는 1996년까지 공사비 2백억 중 30억을 투입하여 유원지 기반시설을 다지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대구광역시는 동촌유원지를 2002년 월드컵 대구경기에 대비해 국제적 휴식 공간으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대구국제공항]

광복 이후 대구시 동구 동촌 대구비행장에는 미 제5공군 사령부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6·25전쟁 중 미 제5공군 사령부의 주요 임무는 38선 이북에 대한 폭격, 유엔군과 국군의 전선과 후방 빨치산 토벌작전에 대한 공중지원 작전이었다. 동촌 대구비행장은 미 공군의 K2기지로 활용되었다. K2비행장은 현재에도 운영되고 있다. K2는 동촌 대구비행장의 상징적인 명칭으로 기억되고 있다. 1953년 2월 미 제5공군 부사령관 어너스트 K 워비톤 준장이 재임명을 받기 위해 귀국차 대구를 출발했다고 하는 기사도 확인된다. 1953년 7월 미공군으로부터 인수한 F-51D전투기[일명 무스탕 전투기] 10기가 대구비행장에 도착해 한국 공군에 인계되었다. F-51D 무스탕전투기는 한국 공군이 보유한 첫 전투기였다. 1957년 공군에서는 젯트 비행단으로 개편함에 따라 동촌비행기지를 확장하였다. 1959년 12월 대구 동촌비행장에서 공군 제2비행단 격납고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1964년 6월 1일 공군의 동촌 대구기지에서는 제1훈련비행단을 제1전투비행단으로 승격시켜 우리나라 최초의 초음속전투기 F-5A를 운영하였다.

민간항공으로는 1959년 12월 중순 KNA에서는 국내선 1회선을 증가하여 대구-서울 간 정기 항공노선을 운항하였다. 1990년 한국공항공단 대구지사가 설립되었다. 1991년 정부의 동촌비행장을 국제공항화 방침에 따라 1996년 대구공항에 국제선 정기노선 취항하였다. 이후 대구국제공항으로 영남권 공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향후 영남권신공항의 추진 여부에 따라 대구국제공항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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