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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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Henry Munro Bruen |
이칭/별칭 | 부해리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정은 |
출생 시기/일시 | 1874년 - 헨리 먼로 브루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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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896년 - 헨리 먼로 브루엔 프린스턴대학교 졸업 |
수학 시기/일시 | 1899년 - 헨리 먼로 브루엔 유니언신학교 졸업 |
활동 시기/일시 | 1899년 10월 26일 - 헨리 먼로 브루엔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한국 파견 선교사로 대구 도착 |
몰년 시기/일시 | 1959년 3월 - 헨리 먼로 브루엔 사망 |
출생지 | 미국 - 미국 |
성격 | 선교사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대구제일교회 목사 |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미국 북장로회 출신의 선교사
[개설]
헨리 먼로 브루언(Henry Munro Bruen)[1874~1959]은 1874년 미국에서 태어나 1896년 프린스턴대학교를 졸업하였고, 1899년 유니언신학교를 졸업한 뒤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오게 되었다. 1899년 대구로 와서 1941년 일제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당할 때까지 40년 넘게 대구·경상북도 지역에서만 선교하였다. 1899년 5월 1일 대구 선교지부의 세 번째 선교사로 임명받고 1899년 10월 26일에 대구에 도착하여, 대구 지역에는 먼저 선교활동을 벌이던 제임스 에드워드 애덤스[안의와], 우드브리지 존슨[장인차]와 함께 대구 선교지부의 창설자가 되었다. 이로써 대구는 공식적으로 한국선교회의 네 번째 선교지부가 되었다. 헨리 먼로 브루언의 한국 이름은 부해리이다.
[활동 사항]
헨리 먼로 브루언은 1903년 대구제일교회 2대 담임 목사가 되었고, 1904년에는 대구 성경학교를 맡아서 운영하였다. 1913년 12월에는 예수교장로회 경산노회 노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5년에는 대구남산교회를 대구제일교회에서 분리하여 개척하고 1920년까지 담임목사로 헌신하였다. 그 밖에도 40년 동안 경상북도 전역을 다니면서 순회 전도와 교회 개척에 노력하여 경상북도 지역에 약 60여 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 헨리 먼로 브루언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자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이갑성을 비롯하여 여러 명이 독립운동가나 목사가 되었다.
한편, 헨리 먼로 브루언은 한센병 환자 선교위원이 되어 1917년부터 한센병 환자 요양소 부지를 확보하고 병동과 예배당을 짓고 구제 사업을 펼쳐 나갔다. 헨리 먼로 브루언은 1941년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우리나라를 떠나 필리핀으로 건너갔고, 1959년 3월 미국에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헨리 먼로 브루언은 1930년 부인인 마사 스콧 브루언이 죽자 1934년 간호 선교사 클라라 헤드버그와 재혼하였다. 2014년 두 번째 부인인 클라라 헤드버그 브루언이 정리한 헨리 먼로 브루언의 선교 이야기가 『아 대구! 브루엔 선교사의 한국 생활 40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