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8230 |
---|---|
한자 | 大邱 上人洞 遺蹟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서로3길 15[상인동 87]|월서로 14[상인동 113]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김병섭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
[개설]
대구 상인동 유적2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이다. 아파트 건립 공사와 관련하여 2005년 9월 5일부터 2006년 7월 10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Ⅰ구역을 발굴 조사하였다. 2005년 9월 1일부터 2006년 4월 7일까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Ⅱ구역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Ⅰ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집자리 18기, 고인돌 1기, 돌널무덤 2기, 부석유구(敷石遺構) 7기, 수혈유구 4기, 매납유구 1기, 야외화덕자리[野外爐址] 1기, 조선시대 암거 시설(暗渠施設), 도랑유구 등이 확인되었고, Ⅱ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수혈 20기, 돌널무덤 2기, 도랑유구 2기와 남북국시대 건물지, 도로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위치]
대구 상인동 유적2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87번지 일대에 있다. 진천천 하류부 북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월배 선상지의 선단부에 해당되며, 사방으로 선단부 충적평야가 이어진다. 월배 선상지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군과 생활 유적을 비롯한 많은 선사시대 유적이 확인되었다. 주변으로도 월성동 고인돌Ⅱ, 월성동 585유적, 상인동 고인돌Ⅱ·Ⅲ·Ⅳ, 상인동 123-1유적 등이 있다.
[형태]
청동기시대 집자리는 평면 형태에 따라 장방형, 방형, 원형, 부정형으로 나누어진다. 장방형 집자리에서는 수혈과 주혈이 확인되었는데, Ⅰ-16호 집자리에서는 중앙 장축열을 따라 기둥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방형 집자리인 Ⅰ-9호와 Ⅰ-18호 집자리에서는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원형 집자리 중 Ⅰ-2호, Ⅰ-3호, Ⅰ-5호 집자리는 중앙 수혈과 양 기둥자리가 있는 송국리식 집자리[松菊里式住居址]이고, Ⅰ-15호, Ⅰ-17호, Ⅱ-4호 집자리는 중앙 수혈만 있으며, Ⅰ-1호, Ⅰ-12호, Ⅰ-13호, Ⅰ-14호 집자리에서는 기둥구멍과 단단한 바닥면이 확인되었다. 수혈유구는 장방형, 말각방형, 원형 부정형을 띤다. Ⅱ구역의 수혈 중 장방형, 원형을 띠는 상당수는 집자리로 추정되며, 집자리 주변에서 확인되는 수혈은 부속시설로 파악된다. 부석유구는 지름 10㎝ 내외의 강돌[川石]이나 깬돌[割石]을 1~2겹 깔아 놓은 형태이며, 부석 사이에는 깨진 민무늬토기 조각과 석기 조각이 확인된다. 부석유구의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는데, 의례(儀禮) 관련 유구일 가능성도 있다. 이와 유사한 양상은 내부에 다량의 깬돌과 강돌이 확인되는 Ⅱ구역 수혈에서도 확인되는데, 폐기 시 인위인 행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Ⅰ구역 동쪽 가장자리에서 고인돌 1기와 북동쪽과 남서쪽에 석축형돌널무덤[石築形石棺墓]이 각각 1기 확인되었고, Ⅱ구역의 동쪽 가장자리에서도 석축형돌널무덤 2기가 확인되었다. 고인돌은 부정형의 상석 아래에 장방형의 형태로 매장 시설이 있는 형태이다. 석축형돌널무덤은 강돌을 이용하여 눕혀쌓기를 하였고, 바닥에는 납작한 강돌을 깔았다. 유물은 Ⅰ구역 집자리에서 혹모양파수[瘤狀把手]가 붙은 토기 조각과 돌칼[石劍], 돌화살촉[石鏃]이 소량 출토되었다. Ⅱ구역 수혈에서는 민무늬토기 아가리 및 바닥 조각과 돌칼 조각, 돌화살촉이 출토되었다. 구멍무늬토기[孔列文土器]와 골아가리토기[口脣刻目土器] 조각도 확인된다. Ⅱ구역 1호 돌널무덤에서는 돌칼 1점과 돌화살촉 11점, 가락바퀴[紡錘車] 1점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상인동 유적2은 발굴 조사 완료 후 아파트가 조성되었고, 주변의 충적지 대부분 지역이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의의와 평가]
대구 상인동 유적2에서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무덤이 구역을 달리하여 확인되었고, 각각 2개 무리로 나누어져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골아가리토기와 구멍무늬토기와 화덕자리가 있는 집자리를 통하여 보면 청동기시대 전기부터 마을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송국리식 집자리와 고인돌 출토 유물을 통하여 청동기시대 중기에 무덤의 축조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